[인물포커스]MB코드를 푸는 두 열쇠…‘행시李’와 ‘사시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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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MB코드를 푸는 두 열쇠…‘행시李’와 ‘사시李’
  • 김경탁·이한듬 기자
  • 승인 2010.11.19 12: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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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사찰과 정치보복 수사…동명이인 두명의 이인규 심층분석

[매일일보=김경탁·이한듬 기자] 이인규 대 이인규. 한자이름까지 어질 仁, 모서리 圭를 쓰는 동명이인의 전직 공무원 두 사람으로 인해 대한민국 정치판이 아수라장이다.

한 명은 행정고시 29회 출신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이고, 다른 한 명은 사법시험24회 전 대검 중수부장이다.

편의상 한 사람은 ‘행시리(李)’ 나머지 한 사람은 ‘사시리(李)’로 호칭해보자. 행시리는 청와대가 배후로 의심되는 ‘민간인 불법 사찰’의 중심인물이고, 사시리는 사상최악의 정치보복사건이라는 오명을 받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의 원인을 제공한 인물로 지목되고 있다.

‘행시리’는 (검찰 등 정부 측 주장에 따르면) 윗선과 교감 없이 독단적으로 민간인 사찰이라는 불법을 저지른 ‘행실’이 문제였고, ‘사시리’는 수사과정에 얻은 팩트(fact 사실?)를 언론에 불법적으로 유출해 일방적으로 보도되게 함으로써 국민여론을 사시(斜視 비껴서 보게)로 만들려고 한 것이 문제였다.

이런 측면에서 두 사람은 이명박 정부에서 비롯된 ‘시대적 퇴행’을 상징하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이명박정부가 정권보호를 위해 저질러왔던 여러 문제점을 풀어가는 키워드라는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 행시리와 사시리 두 사람의 발자취를 짚어봤다.

행시 출신 공무원과 사시 출신 검사, 다른 길 걸어온 두 인규의 접점

행시李, 민간인 불법 사찰 혐의 인정돼 1년 6개월 실형 선고
사시李, 공무상비밀누설·명예훼손 피소위기…감옥서 만날까?

행시李 이인규, 이영호-박영준-MB로 이어지는 ‘영포라인’ 의혹
사시李 이인규, 신재민 전 차관 소개로 MB 만난 후 각별한 사이

17일 민주당 이석현 의원의 폭로로 인해 ‘민간인 불법사찰’이라고만 하기에는 다소 성격변화가 있었지만 통상적으로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은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공직자가 아닌 민간인을 불법적으로 사찰한 사건을 일컫는다.

▲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 <사진=MBC 보도화면 캡쳐>

민간인 사찰의 중심 ‘행시李’

2008년 7월 촛불정국이 끝난 직후 촛불시위의 배후에 대한 전방위적 조사가 시작되는 시점에, ‘공무원 비리 조사’라는 명목으로 신설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사찰 대상이 공무원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계기는 김종익씨 사례가 불거지면서이다.
 
국민은행의 용역회사인 ‘뉴스타트(NS)한마음(당시 KB한마음)’ 대표였던 김씨는 2008년 6월 쇠고기 수입 문제를 비롯한 이명박정권의 정책 전반을 비판한 일명 ‘쥐코 동영상’을 하루평균 방문자 수 20여명에 불과한 블로그에 스크랩한 ‘죄(?)’ 때문에 뒤틀린 인생을 살게 된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김씨의 동영상 스크랩을 이유로 김씨 주변에 대한 사찰에 착수, ‘밥줄 끊기’에 나서는 한편 김 씨를 대통령에 대한 명예 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결국 김씨는 유죄취지의 처분인 기소유예 처벌을 받았다.

이 사건은 올해 6월 21일 민주당 신건·이성남 의원이 국회 정무위에서 의혹을 제기하고, 이어서 MBC <PD수첩>이 같은 달 29일 김씨 인터뷰를 토대로 사찰의 전모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그간 베일에 싸여 있던 민간인 사찰 문제가 수면위로 드러나는 계기가 됐다.

이 사건의 중심에는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이 있었다. 그는 민간인 사찰 문제가 표면위로 드러난 직후 사회여론의 반발이 거세지자 해당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올해 7월 직위에서 물러났고, 15일 서울형사법원은 김씨에게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하는 등 관련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물었다.

총리 산하 위장된 靑 직할기관?

법정에서 실무자들에 대한 사법적 단죄는 이뤄졌지만 ‘민간인 사찰’의 본질이 ‘윗선’, 즉 청와대의 개입여부에 있다는 점에서 아직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사건의 수사주체인 검찰과 총리실 그리고 청와대 측은 민간인 사찰이 이 전 지원관을 비롯한 일부 관계자들의 독단적인 행동에 의한 것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가 직접 개입됐다는 의혹에 힘을 싣는 정황들이 속속 제기되고 있고, 특히 민주당 의원들은 연일 청와대의 개입 가능성을 거론하며 민간인 사찰 ‘몸통’의 정체를 밝혀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석현 의원운 17일 국회 예결위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서울중앙지검 수사2과 분석보고서에 민간인 사찰보고서가 대통령 비서실의 민정수석에게 보고되었다는 내용이 적시되어 있다고 폭로했다.

김종익씨 외에도 수많은 민간인이 불법 감시되고 있음이 확인됐으며, 청와대 행정관이 직접 김성호 국정원장, 남경필 의원 부인, 정두언 의원 부인, 전옥현 국정1차장, 정태근 의원 부인이 운영하는 회사, 친박계 이성현 의원, 민주당 정세균 대표까지 사찰했다는 것이다.

이 의원의 이날 폭로 이전에도 청와대 개입 정황은 있었고, 특히 국무총리실 산하기관으로 만들어진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사실상 총리보다 청와대의 지휘를 받았다는 증거도 있다.

권태신 전 총리실장은 국회 정무위에서 민간인 사찰에 대한 의혹을 추궁받은 올해 6월 직전에서야 이인규 당시 지원관으로부터 관련내용을 처음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는데, 사찰 피해자인 김종익씨는 기소유예 처분에 불복해 헌법소원을 청구한 직후인 올해 2월 청와대 법무비서관실 행정관으로부터 헌법소원 청구 경위를 묻는 전화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이 말은 즉, 청와대가 총리실보다 최소 4개월 이상 먼저 이 사건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이는 청와대가 총리를 거치지 않고 지원관실로부터 직접 보고를 받았다는 말이다.

영포회 그리고 진짜 몸통

이인규 전 지원관과 불법 사찰의 ‘몸통’을 잇는 비선 보고라인으로 지목된 사람은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다. 공교롭게 두 사람은 모두 이명박 정권에서 논란의 중심에 있는 ‘영포라인’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 전 비서관은 포항에서 태어났고, 이 전 지원관은 경북 영덕 출신이지만 포항에서 초·중·고를 나왔다. 그리고 이 민간인 사찰의 ‘몸통’으로 지목되고 있는 사람은 영일·포항 출신 5급이상 중앙공무원의 모임인 ‘영포회’의 대부로 불리는 박영준 전 총리실 국무차장이다.

여기에 더해 포항출신으로 알려진 이명박 대통령이 영포회 활동을 했다는 의혹까지 덧붙이면 민간인 불법 사찰에 청와대가 깊이 개입돼 있다는 세간의 의혹은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확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영포회 측은 이 대통령과 이 전 지원관 모두 영포회 소속이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고, 수사를 맡은 검찰 역시 청와대 개입여부에 대해 확실하게 선을 긋고 있다.

아울러 이 지원관에 대한 법원의 결정이 정해지면서 사건은 수습국면으로 접어들어, 올해 여름 정치권을 뜨겁게 달군 민간의 사찰 사건의 꼬리도, 몸통의 실체도 모두 이 전 지원관만을 향한 채 마무리되는 형국이다.

그러나 야권은 지금까지도 청와대가 직접 민간인 사찰에 개입했을 것이라는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으며, 최근에는 민간인 사찰 당시 청와대가 총리실 측에 대포폰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제기, ‘진짜 몸통’의 실체를 밝히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사시李’, MB와 ‘각별한’ 사이

관련자들이 이명박 대통령과 ‘행시리’ 이인규와의 인연을 극구 부인하고 있는 것과 달리 ‘사시리’ 이인규는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부터 정권의 실세로 화려하게 등장한 인물이고, 그 관계가 이미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큰 차별성을 가진다.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은 이 대통령이 1999년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일하던 시절, 검찰 파견직으로 워싱턴 영사관에서 일하며 당시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이었던 신재민(전 문화관광부 차관, 전 문광부 장관 내정자)의 소개로 각별한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정부가 출범한 직후 ‘사시리’ 이인규는 검찰 요직인 대검찰청 중수부장에 임명되면서, 박연차 정관계 로비사건을 본격적으로 수사하기 시작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할 만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서거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노 전 대통령의 급서로 인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는 형식적으로만 수사하고, 죽은 권력에 대해서는 먼지가 나올 때까지 터는 식으로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비난 여론에 맞닥뜨린 것이다.

결국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3주 만인 지난해 6월 12일, ‘박연차 게이트’ 수사 결과를 5분짜리 브리핑과 함께 종결하면서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함에 따라,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내사 종결(공소권 없음) 처분했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에서 이 전 중수부장은 구체적 증거 없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모두 4차례에 걸쳐 모두 640만 달러의 뇌물을 수수했다”고 발표하면서, “‘역사적 진실’은 수사기록에 남겨 보존하겠다”고 강변했고, 아울러 “수사 과정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최선을 다했다”고 수사의 정당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야당 및 시민단체는 이 전 중수부장의 ‘무리한 수사’에 대한 책임과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을 물으며 자진 사퇴를 촉구했고, 결국 이 전 중수부장은 그해 7월 14일 중수부장직을 물러났다.

이 전 중수부장은 “검사로서 소임을 다했다. 이제 떠나야 할 때가 됐다”고 사퇴 이유를 밝혔으나, 실제로는 노 전 대통령이 서거로 인한 검찰 책임론이 거세진 이후로 줄곧 거취를 고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빨대’ 의심받는 사시리, ‘입’이 말썽?

노 대통령 수사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익명 취재원’을 일컫는 이른바 ‘빨대’의 일방적인 정보흘리기가 언론에 무차별 보도되면서 실제 재판과정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기도 전에 당사자의 인격을 단죄, 말살하는 ‘피의사실공표’에 대한 부분이었고, 이러한 문제는 이후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수사과정에서도 그대로 반복되는 악순환을 낳았다.

야권과 노무현재단 측은 형법상 범죄로 규정되어있는 ‘피의사실 공표’를 뿌리뽑기 위해 익명의 검찰 관계자를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지만 검찰이 자기 자신에 대한 고발건을 제대로 수사할리는 만무한 일이었다.

그리고 현직 검사로 있을 때부터 ‘빨대’로 의심받았던 이인규 전 중수부장이 공직을 떠난 이후에 벌이고 있는 일련의 대언론활동은 결국 노 대통령을 벼랑으로 밀어넣었던 ‘빨대’의 정체가 중수부장 본인이었다는 의심을 더욱 강화시켜주고 있다.

이제는 공직을 떠나 ‘이인규 변호사’로 살고 있는 그는 지난 8월 경찰청장에 내정된 조현오 청장의 ‘노무현 대통령 자살은 차명계좌가 발견됐기 때문’이라는 발언 파문과 관련해 “맞는 것도 아니고 틀린 것도 아니다”라는 애매한 말로 한 차례 논란을 야기했다.

이어서 최근에는 한 기자와 만나 “(수사당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현재 민주당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박지원 의원과 법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우윤근 의원 두 사람에게 돈을 건넸다고 진술했었다”라고 말한 사실이 보도돼 여야 정치권 모두로부터 비난을 사고 있다.

비리 정치인으로 낙인찍힌 박지원·우윤근 의원은 즉각 발끈하고 나섰다. 이들은 그의 주장이 “명백한 허위사실”이라며, 고소 등 강력대응을 시사했으며, 발언 배경에 대해 “국회 국정감사에 불출석한 그를 검찰에 고발했기 때문에 불편한 심사를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박준선 의원도 “전직 검사장이 수사 중에 알았던 사실이나 사실인지, 아닌지가 확정이 안 된 내사단계의 내용을 공개적으로 언론에 공개한 것은 매우 부적절했다”고 지적하면서 국회 법사위 차원에서 이 전 중수부장을 수사의뢰하거나 고발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16일 법사위 전체 회의에서 국감 증인 불출석에 따라 이 전 부장을 고발한 점을 거론하면서 “이런 식으로 앙갚음을 하는가 해서 마음이 착잡했다”며 “이는 국회의 권위에 관련한 문제로서 엄정히 응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박지원 원내대표에 따르면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박 원내대표와 잘 아는 변호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는 해명을 전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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