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4년 뜸들인 초대형IB, 또 규제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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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4년 뜸들인 초대형IB, 또 규제 리스크
  • 공인호 기자
  • 승인 2017.08.16 11: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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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호 금융팀장

[매일일보 공인호 기자] 올 상반기 국내 증권사들이 눈에 띄는 호실적을 거뒀다. 주요 증권사 10곳의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1조339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기간과 비교해 40% 넘게 증가했다고 한다.

특히 舊대우증권 인수를 통해 몸집을 불린 미래에셋대우는 합병 후유증을 빠르게 극복하며 업계 1위에 올라섰고, 전통강자 한국투자증권도 미래에셋대우와 양강 체제를 구축한 모습이다. 통상 주식시장 호조로 거래대금이 늘어나면 증권사 수익성도 자연스레 개선되지만 올해는 과거와는 다른 차별성을 보인다.

전체 순이익 비중에서 위탁매매 비중이 줄고 IB(투자은행), WM(자산관리) 부문의 수익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같은 변화는 초대형IB 진입을 준비 중인 대형 증권사들의 체질개선 노력이 컸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증권사에 한해 자기자본의 200% 내에서 자체적으로 어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미래에셋대우를 비롯해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삼성증권 등 5개사가 인가 신청을 제출한 상태다.

이들 증권사는 4년 전인 지난 2013년 대형IB 육성 내용이 담긴 자본시장법 개정 이후 공격적인 M&A(인수합병)와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확충에 나서왔다. 이 과정에서 주주 반발과 주가 급락이라는 후유증을 겪기도 했으며, 최근까지도 급격히 늘어난 자본금 활용에 애를 먹었다. 그런데도 초대형IB를 포기하지 않은 것은 새 수익원 확보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여기서 밀리면 끝'이라는 절박감이 작용했다. 

이들 증권사는 금융당국의 인가시 곧바로 내년부터 발행어음 업무에 나설 계획이다. 기업금융 시장에 진출해 시중은행과의 치열한 경쟁도 예고하고 있다. 과거 위탁매매 중심의 천수답 경영에서 벗어나 '한국판 골드만삭스'로 거듭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삼겠다는 결의마저 엿보인다.

하지만 최근 삼성증권이 인가 과정에서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 발목이 잡혔다는 소식은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발단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 공여 혐의와 관련된 재판이다. 삼성증권 대주주는 삼성생명이고 삼성생명의 대주주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지만, 이 부회장이 특수관계인으로 묶이면서 불똥이 튀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한국 재벌기업의 특수한 지배구조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삼성증권은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별다른 반응은 내놓지 않고 있다. 삼성그룹의 실질적 총수가 법정다툼에 휘말려 있는데다 '재벌개혁'이라는 새 정부의 서슬퍼런 칼날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삼성증권 입장에서는 이번 결정이 억울할 수 있다. 적격성 심사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번번이 매각 루머에 휘말리는 등 서자(庶子) 취급을 받을 정도로 그룹 지원이 전무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경쟁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부진한 실적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때문에 삼성증권 내부에서는 초대형IB를 존재감 부각의 계기로 삼겠다는 목소리도 있어왔다.

그러나 당장 발행어음 업무부터 제동이 걸리면 한국판 골드만삭스의 꿈은 멀어질 공산이 크다. 규제 리스크가 장기화되기라도 하면 수년내 초대형IB 그룹에서 이탈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하기 어렵다. 경쟁사들 역시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비단 삼성증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우려를 표하고 있다.

물론 발행어음 등 초대형IB 업무의 경우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데다 대규모의 자금조달이 병행된다는 측면에서 깐깐한 심사는 필수다. 하지만 이현령비현령 식의 애매한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지난 4년간의 노력을 수포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이는 금융당국의 정책 신뢰와도 직결된 문제다. 백년대계(百年大計)도 모자랄 판에 정권에 따라 금융정책 기조가 수시로 흔들리는 전례를 더이상 반복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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