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과 싸우며 하루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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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과 싸우며 하루 보낸다”
  • 송문영 기자
  • 승인 2007.01.29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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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5시간 이상 근무, 적막한 생활에 ‘고문 아닌 고문’…무가지 배포에 설 자리마저 잃어가

많은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지하철역, 그 한 편에는 헌 자리에 우뚝 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시설이 있다. 바로 역사 내 매점과 신문가판대.

장애인과 65세 이상의 기초생활수급대상자, 또는 국가유공자들의 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이 시설은 한때 그들에게 주 수입원의 역할을 하며 생활의 터전을 제공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대기업의 과자판매기와 무가지들이 대규모로 지하철역을 파고들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기존의 매점과 신문가판대들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하루 꼬박 바쳐도 시급 2500원, 법적 최저임금에도 못미처

지난 24일 저녁 6시40분께 지하철 5호선 충정로역.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한 아주머니가 눈에 띈다. 바로 충정로역에서 매점을 운영 중인 윤 모씨(60).

약 2개월 전 서울특별시 도시철도공사로부터 매점을 임대받아 장사를 시작한 윤씨는 하루 12시간 이상 한 곳에 앉아있어야 하는 ‘고문 아닌 고문’에 시달리고 있다.

몸이 불편해 집에 누워있는 남편을 대신해 윤씨가 일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부터. 처음엔 다른 사람이 운영하는 매점에서 월급제로 근무하던 윤씨는 매점 운영권에 당첨되며 비로소 자신의 장사를 시작했다. 윤씨는 매점 임대 신청자들이 워낙 많은 탓에 운영권을 따내는 것이 아파트 분양 경쟁률과도 비슷하다고 귀띔했다.

오전 6시30분께 남편이 매점에 나와 문을 열어두면 집안일을 마쳐놓은 윤씨가 오전 10시께 출근한다. 그리고는 밤 11시가 될 때까지 꼬박 12시간이 넘는 시간을 같은 자리에서 앉아있어야 한다.

가만히 앉아있기 지겹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씨는 “지겹지. 말도 못해. 책도 봤다가 사람들도 쳐다봤다가 꼬박꼬박 졸았다가 그러지 뭐”라고 푸념했다. 또 “화장실에 갈 때는 가게 봐줄 사람이 없어서 물건들 다 매점 안에 들여놨다가 갔다 오면 다시 꺼내놓고 그래”라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하루의 반 이상을 ‘죽은 듯이’ 앉아있어도 하루 수입은 고작 13~14만원. 이중 월세와 관리비, 전기세, 청소비 등을 제하고 남는 돈은 수입의 30%정도인 4만원 가량이다. 시급으로 따지면 2500원, 이는 법적 최저임금액인 3,480원에도 훨씬 못 미친다.

“그냥 소일거리나 하려고 나오는 거지 이 돈으로 생활은 못해. 그나마 자식들이 다 커서 제 갈길 찾아갔으니 남편이랑 나랑 둘이 쓸 용돈이나 버는 거야.”

기자가 윤씨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율무차가 들어있는 종이컵을 든 아주머니 한분이 다가왔다. 매점 옆에서 자판기를 관리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커피 맛을 시험해보려고 했는데 실수로 율무차를 뽑았다”며 윤씨에게 율무차를 건넸다. “새 거니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마시라”는 당부와 함께

율무차를 받아든 윤씨는 기자에게 “여기 있다 보면 별별 사람들을 다 만나. 데이트 한번 하자고 프러포즈하는 사람도 있고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도 있고. 이렇게 고마운 사람도 있고”라며 웃어보였다.

윤씨가 운영하는 매점은 3년의 계약기간이 끝나면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로 운영권이 돌아간다. 때문에 윤씨는 3년 후 또 다시 ‘살 궁리’를 찾아야한다.

일하는 것만도 다행, 무가지 배포에 문 닫는 가게 늘어

같은 날 저녁 8시께. 지하철 4호선으로 발걸음을 옮긴 기자는 길음역 신문가판대에서 당일 판매한 신문의 부수를 세고 있는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올해로 80살이 된 김씨는 신문을 유통하는 회사에 고용된 월급제 가판 관리인. 부인과 단둘이 살면서 가판대 관리를 통해 받은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김씨는 새벽 5시에 지하철역으로 출근해 밤 9시가 돼서야 퇴근한다.

하루 16시간을 좁은 가판대에서 보내며 그가 받는 월급은 100만원 정도. 김씨는 “근무시간은 많아도 100만원이면 노인 둘이 살기에 괜찮은 수입이지 뭐”라며 껄껄 웃는다.

일하며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씨는 “여기가 너무 좁아 그게 힘들어. 화장실 한번 가려고 해도 문이 워낙 작고 낮게 달려있어서 구부리고 나가야 되니까 허리도 아프고”라고 털어놨다.

그나마 일을 할 수 있는 김씨는 다행인 셈이다. 언젠가부터 수많은 무가지들이 지하철역을 깊숙이 파고들며 유료신문들의 판매량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때문에 역내 신문가판대 중 절반 정도는 문을 닫은 상황.

김씨는 “신문은 하루에 보통 100부, 많이 나가면 150부 정도 나가. 일간지 단가가 200~250원 정도니까 신문 팔아서 남는 돈은 3만원도 채 안되지. 그나마 사람들이 껌이나 초콜릿 같은 걸 좀 사가서 다행이야”라고 고백한다.

가판대 구석에 진열돼있는 초콜릿을 몇 개 사고 돌아서는 기자에게 김씨는 “말동무가 돼줘서 고맙다”고 연신 인사하며 다시 신문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신문가판대의 한 관리직원은 “요즘 신문가판대의 매출이 거의 안 나와 임금은 커녕 임대료도 주기 힘든 실정”이라며 “3곳 중 2곳 정도는 임의로 비워놓아 거의 버려진 상태다. 나 같아도 공짜로 나눠주는 신문을 보는데 누가 굳이 돈을 내고 신문을 사보겠느냐”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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