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대우조선 채무조정안 두고 ‘시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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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대우조선 채무조정안 두고 ‘시름’
  • 김현정 기자
  • 승인 2017.03.2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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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권자집회 내달 17∼18일 5회 개최…1회만 부결돼도 P-플랜 가동
국민연금 반대 또는 불참해도 P-플랜 시행…투자원금 날릴 수도
“대우조선 회생 못하면 배임 책임…투자위원들에게 찬성 강요 못해”

[매일일보 김현정 기자] 국민연금공단이 대우조선해양의 채무조정안을 두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내놓은 구조조정 방안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뾰족한 답을 찾기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26일 “정부 발표 이후 관련 부서별로 대우조선 채무조정안에 대한 찬성이나 반대, 기권 등 각각의 경우를 두고 법률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영향을 줄지 검토를 진행했다”면서 “다음 주 내부 회의를 열고 심의하겠지만 쉽게 결론 내지는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기금운용본부는 출자전환의 적정성, 경영개선계획의 합리성, 기업가치 보전 방안, 법률적 위험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국민 노후자금의 선량한 관리자로서 기금의 장기적 이익 제고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규정에 따라 신중하게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현재 국민연금은 찬성과 반대 중 어떤 선택도 내리기 어려운 처지다.

찬성하면 또다시 특정 대기업 살리기에 국민의 노후자금을 동원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나중에 대우조선이 정상화에 성공하지 못하고 끝내 손실을 보게 된다면 책임 추궁까지 당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에 찬성했다가 뒤늦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으며 된서리를 맞았다.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해 국민연금공단에 1000억원대 손해를 입힌 배임 혐의로 재판까지 받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금운용본부장을 비롯한 투자위원회 위원들에게 나중에 문제가 되면 개인이 배임 혐의까지 뒤집어쓸 수 있는 의사 결정을 강요할 수 없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반대 결정을 내리기도 쉽지 않다. 정부는 채무 재조정에 워크아웃과 법정관리를 결합한 ‘프리패키지드 플랜(P-플랜)’을 가동하겠다는 방침이다.

P-플랜에 들어가면 대우조선의 수주 취소나 선수금 반환 요구 등으로 이어져 기업가치가 폭락하고 사실상 대우조선의 청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국민연금은 투자 원금까지 날릴 수도 있다. 이에 업계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기권’하거나 아예 사채권자집회에 불참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도 나온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기권하거나 불참해도 결과적으로 P-플랜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마땅한 대안이 될 수는 없다. 회사채 투자 피해와 관련한 국민연금의 소송 제기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강면욱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최근 이와 관련,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면서도 “소송을 제기할 때의 실익과 유불리를 검토할 수는 있다”라고 언급해 소송제기 가능성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국민연금은 대우조선해양과 회계법인 딜로이트 안진 등을 대상으로 분식회계로 입은 주식 투자 손해를 배상하라는 489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정부와 채권단은 지난 23일 선(先) 채무조정, 후(後) 추가 유동성 지원의 자율적 구조조정 방안을 우선 추진하는 대우조선 구조조정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에 따르면 1조3500억원 규모의 대우조선 회사채와 2000억원 규모 기업어음(CP)의 50% 출자전환과 나머지 50%의 만기 연장이 필요하다.

국민연금은 대우조선 회사채 전체 발행잔액의 30%에 육박하는 3900억원어치를 들고 있다. 사채권자집회에서 채무재조정안이 수용되려면 출석 의결권의 총 발행채권액 3분의1 이상을 가진 채권자들이 참석해 참석 금액의 3분의2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 이와 함께 발행 채권 총액 3분의1 이상의 찬성 요건도 충족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대우조선 회생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셈이다. 이 밖에 우정사업본부와 사학연금도 각각 1800억원, 1000억원을 들고 있고 금융투자업계(3000억원), 시중은행(600억원)까지 합치면 기관투자자 보유 물량이 전체의 4분의3을 넘는다. 특히 우정사업본부의 경우 위탁 투자액까지 합치면 보유 물량이 3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3200억원(23.7%) 정도를 개인투자자들이 들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연기금이 국민연금의 선택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어 국민연금의 입장이 중요하다”면서 “국민연금이 찬성한다면 채무재조정이 사채권자집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커지겠지만, 국민연금으로서는 쉬운 선택은 아니다”고 말했다.

대우조선의 사채권자집회는 다음 달 17∼18일 대우조선 서울사무소 17층 대강당에서 5회에 걸쳐 열린다. 5회 중 1회만 부결돼도 P-플랜에 들어간다. 한국거래소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대우조선 회사채 5개 종목을 투자유의채권종목으로 지정하고 지난 24일 매매거래를 중지했다.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 나이스신용평가는 같은 날 일제히 대우조선해양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B-’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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