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殺)처분 광풍이 지나간 자리, 초주검이 된 AI 피해농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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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殺)처분 광풍이 지나간 자리, 초주검이 된 AI 피해농민들
  • 김종국 기자
  • 승인 2007.01.03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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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비도 안되는 정부수매가, 피해농민들 ‘울며 겨자먹기’

AI(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한 농장주들의 피해가 극심한 지경이다. 지난 11월 19일 전북 익산의 한 농가에서 올 들어 처음으로 ‘고(高)병원성’ 조류독감이 발생한 이후 현재까지 92만여 마리의 가금과 가축이 살(殺)처분됐다. 하지만 ‘발견 즉시 도살처분’하는 방역당국의 방침은 피해보상 국면에선 함흥차사여서 농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순수 피해액만 2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양계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는 가운데 관련 업종 종사자들은 하나같이 ‘2003년의 악몽이 재현되고 있다’며 읍소하고 있다.

게다가 AI 첫 발병이후 한달 보름이 지났지만 사태는 수그러들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 AI 바이러스는 전북→충남→경기로 퍼지면서 북상경로를 그리고 있다. 농민들은 언제, 어디서 또 AI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려올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차례 광풍이 지나간 전북지역 피해농민들의 설움을 <매일일보>이 들어봤다. 

“발견 즉시 도살 처분했으면서 즉각 보상은 왜 못해”

지난달 초 AI(Avian Influenza:조류독감) 최초 발생지인 전북 익산과 김제는 유명 정치인들과 기자들로 연일 북적였다. 국가재난사태를 방불케 하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여야 정치인들은 “피해농민들이 하루 빨리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 지원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다짐했다.

한명숙 국무총리도, 박홍수 농림부 장관도 피해지역을 방문해 삼계탕을 먹어가며 “닭 및 계란의 긴급 수매와 살처분 보상금 50%를 연내(2006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명분으로 전광석화처럼 이뤄진 방역처리, 하지만 정부의 피해 보상처리는 사건 발생 이후 한 달 보름이 지나도록 더디기만 하다.

실제 기자의 취재결과, 고병원성 AI의 발생으로 23만 6천마리의 닭과 돼지, 개가 안락사된 전북 익산 함열읍(11월 19일 최초 발생지역)의 피해농가들 조차 60만수(首)의 닭 중 30%의 정부수매가 이뤄졌을 뿐, 현실적인 보상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2차(전북 익산 황등면), 3차(전북 김제 공덕면), 4차(충남 아산시 갈산면) 발생 지역은 말할 것도 없다.

이와 관련 양계협회 및 육가공업체 관계자들(하림, 마니커, BBQ 등)은 이번 AI 피해로 인한 전북지역 피해액만 1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인근 농가의 간접적 피해와 관련업체의 매출 손실액까지 합하면 500억원 대의 피해액이 산출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농림부 가축방역과의 한 관계자는 “아직 사태가 진행중이라 정확한 피해액을 산출하기란 쉽지 않지만 정부는 117억원의 피해보상금을 해당 농가에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북 익산ㆍ김제 실질적 피해보상 실종

하지만 익산지역농가 AI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소속의 신제호씨의 설명은 달랐다. 신씨는 “정부는 터무니없이 낮게 (양계) 시가를 책정했다”면서 “50% 피해보상금을 연내(2006년)에 지급하기로 했지만 그것도 이제야 협의되고 있어 너무 힘든 상황이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또 “정부와 언론이 이번 사태를 이토록 심각한 지경으로 몰고 왔다”며 “초주검이 된 우리에게 더 이상 말로만 떠들지 말아 달라”고 원통한 마음을 전했다. 사정은 익산 함열읍도 마찬가지다.

함열읍 AI 비대위 신승택 위원장은 “한차례 방역 광풍이 지나간 전북지역은 현재 대부분 방역처리반이 철수돼 출입이 자유로운 상황이지만 스산하기 그지없다”며 그곳 분위기를 전했다. 피해 보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신 위원장은 “정부차원의 보상평가협의회가 구성됐다. 그곳에다 검증된 피해액을 서류로 제출하면 4~50%의 보상이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신 위원장은 한숨을 깊게 내쉬며 “우리의 입장이 불과 10%도 반영되지 않은 시가책정으로 짜여진 보상안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면서 “농민들은 도살처리 안된 남은 닭의 정부수매에 목을 메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AI 사태 발생 직후 정부는 판로가 막힌 전북 지역 양계 농민들의 손실을 보전하고 서둘러 수매에 나서겠다고 수차례 발표했었다.

하지만 정부수매가는 원가 1510원(육계 1.5kg 한 마리 기준)의 절반이 가까스로 넘는 758원으로 책정돼 가뜩이나 비통한 농민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농민들은 “울며 겨자 먹기다”라고 입을 모았다. 이와 관련 신승택 위원장은 “대안도 없고 희망도 없는 농민들이 정부수매에 목을 메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처음에는 농민들도 사료값도 안되는 758원에 절대 넘길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밝혔다.

현재 병아리 1마리 값도 650원이다. 힘들게 키운 닭을 버스비도 안 되는 가격에 넘기는 격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대한양계협회의 정모 회원은 “병아리 값보다 닭 값이 더 싸다면 누가 닭을 키우겠냐”면서 “정부와 예하 기관은 이번 사태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처신하지 말고 농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가격으로 정부수매를 계속 추진하라”고 주장했다.

닭, 계란, 농산물까지 판로 막혀

게다가 직접적으로 살처분 지역에 속해 있지 않았지만 살처분 경계지역으로 지정돼 육계 뿐 아니라 농산물의 판로가 차단당한 농민들의 간접 피해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전북 김제의 살처분 경계 지역에서 양계농가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AI 발생 이후 닭, 계란 뿐 아니라 일반 농산물도 사려는 사람이 없어졌다”면서 “조류독감 지역에서 생산되는 무엇인들 사람들이 먹으려 들겠냐”며 하소연 했다.

김씨의 안타까운 설명은 그칠 줄 몰랐다. “경계지역으로 속하게 되면서 닭을 출하할 수 없어 이미 다 성장한 닭에게 쓸데없이 아까운 사료만 계속 먹이는 꼴이다. 사료비가 일일 한 수(마리) 당 50원이 드는데, 닭이 4만수 쯤 되면 하루 2백만원의 손해를 보는 셈이다. 바로 이런 상황 때문에 농민들이 얼마 쳐주지도 않는 정부수매에 열을 올리는 것이다. 닭을 가지고 있으면 하루하루 막대한 손실로 빚만 눈두덩이처럼 불어나는 지옥같은 현실이다.”

게다가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격으로 익산교육청은 지난 11월 29일 이 지역 일대 6개 초ㆍ중ㆍ고등학교에 AI 발생 지역과 가까운 곳에 사는 학생들은 가정학습을 시키라며 58명의 학생들을 귀가시켜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가 빗발치기도 했다. 또한 대한적십자사 전북혈액원도 AI 지역 인근 주민들로부터는 헌혈을 받지 않겠다고 발표해 농민들과 네티즌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에 대해 농민들은 하나같이 “가뜩이나 조류독감 피해로 속이 상해 죽겠는데, 해도 해도 너무 한다”며 익산교육청과 전북혈액원을 맹비난했다.  

“더 이상 말은 필요 없다. 연내 50% 보상 약속이라도”

이와 같이 AI 피해가 다방면에 걸쳐 전북지역 농민들을 괴롭히는 가운데 조류독감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증폭되고 있다. 농민들은 이대로 가다가는 ‘2003년의 악몽’이 재현될 수 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3년 겨울, 해를 넘기면 4개월 간 지속된 AI 사태로 전국 10개 시ㆍ군의 19개 농가에서 530만마리의 닭과 오리 등이 살처분됐고 1500억원 상당의 피해를 남겼다. 이에 절망한 농장주와 치킨업주 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양계관련업계의 연쇄부도가 이어졌다. 아직까지 농장을 버리고 떠난 농민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지만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란 게 농민들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전북 익산의 한 농장주는 “죽고 싶어도, 떠나고 싶어도 그럴 수 도 없는 상황이다. 농가 당 빚이 6천, 7천인데 어디를 가겠냐”며 “사료값도 감당이 안되는 지경이다. 헐값이지만 정부수매라도 부쳐야지 어떻게 하겠냐”고 눈시울을 붉혔다. 피해보상을 놓고 정부와 씨름하는 것은 전북지역만이 아니다.

지난달 22일, 방역당국은 충청남도 아산시 갈산면 탕정리 일대 37개 농장의 오리와 닭 2만 4천 7백 마리를 살처분하고 반경 5백미터 내 돼지 4천여마리도 안락사후 매립했다.

하지만 이곳 역시 문제는 사후 피해 보상에 있었다. 한국오리협회의 시세정보에 따르면 AI 사태 이전(11월 13일) 전국평균 생오리 가격은 4700원(3kg 기준)이다. 조류독감 소식이 알려진 지난 11월 29일에는 4200원, 12월 중순에는 3000원대 후반까지 폭락했다.

그런데 정부의 보상가 기준 시점은 ‘AI 발견 일주일 전’이다. 따라서 아산지역의 경우 익산과 김제의 경우 보다 훨씬 낮은 보상가 적용을 받게되는 셈이다. 충남지역보다 전북지역 AI가 한달 전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아산지역 피해 오리농가들은 정부의 비 현실적인 보상가 잣대에 반발하고 나섰다.

무조건 발생 1주전 시세, 말이 되나

탕정리에서 오리농가를 운영하는 한 농민은 “무조건 발생 1주전 보상기준이 말이되냐”면서 정부와 피해보상 평가단의 ‘납득할 만한 보상’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아산시청 수위방역계의 한 관계자는 “농민들의 요구에 맞게 최대한 보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방역이 끝 난지 얼마 안돼서 이제 본격적으로 보상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힌 뒤 보상시세 건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다른 관계자는 “종오리의 경우 정부 보상가가 한 마리당 3만 3천원으로 책정됐다”고 밝혔는데 이는 종오리 평균 시세의 2/3 수준이다. 이에 대해 농민들은 종오리 보상가격을 2004년 수준인 4만원대로 책정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생체오리 수매가격을 kg당 1400원에 하겠다고 지난달 27일 발표했다. 이는 생체오리 연 평균 가격에서 500원이나 떨어지는 시세라 축산농가의 시름은 가일층 깊어질 전망이다. 이번 AI 사태로 피해가 극심한 것은 농민들만이 아니다. AI 추가 발생 소식이 줄을 잇자 닭과 오리를 취급하는 전 업종에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연말연시를 맞아 치킨업계는 ‘크리스마스와 설 특수’를 노리고 있지만 AI 발생소식이 11월에 이어 지난달 내내 끊이지 않으면서 매출이 60%까지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 (주)하림이나 BBQ 등 대기업은 정부의 닭 소비촉진 캠페인에 힘입어 서서히 평년 수준의 판매량을 회복하고 있지만 자본 기반이 취약한 영세업체들은 줄도산이 우려된다고 업계 관련자들은 지적했다.

닭, 오리 관련 영세업체 도산 우려

실제로 AI 발생 범주 외곽에 있는 인천 월미도의 한 유명한 K삼계탕 전문점은 AI 한파로 손님들의 발길이 끊긴지 오래다. 이 식당 주인 한모씨는 “2003년 조류독감의 악몽이 재현되고 있다”며 “진작에 업종을 전환했어야 하는데 너무 늦었다. 우리 같은 치킨업주들은 누가 보상해주냐”며 신세를 한탄했다.

영세 오리전문식당도 사정은 매한가지다. 인천의 한적한 ‘박촌’에 위치해 주말마다 몰려오는 손님들로 한때 북새통을 이뤘던 S오리전문식당의 업주 김모씨도 “이정도까지 매출이 떨어질 줄 몰랐다”면서 “추운 겨울이 가면 조류독감도 물러간다고 들었다. 내년 봄이 어서 빨리와서 장사가 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류 인플루엔자 공포가 전국에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농림부와 시ㆍ도 방역당국은 닭고기 소비장려운동을 벌이고 생계안정금지원, 가축입식자금지원, 소상공인경영지원 등 다양한 방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일각의 지적처럼 이 모든 대책이 ‘대선을 앞둔 선심성 생색내기’가 아닌 실질적인 AI 피해보상으로 이어지려면 ‘즉각 살처분 원칙’대로 ‘즉각 보상의 원칙’도 지켜져야 할 것이다.

한편 대한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전북 지역의 AI 바이러스(H5N1)는 중국 서부 ‘칭하이’에서 분리된 유전자 그룹에 속한다고 지난 15일 발표했다. 감염 경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오리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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