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고향으로 돌아 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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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고향으로 돌아 갈 수 없다”
  • 김종국 기자
  • 승인 2006.12.26 1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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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회 '세계 이주민의 날' 맞이한 한국 이주노동자들의 쓸쓸한 삶

지난 18일은 제7회 ‘세계 이주민의 날’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문제와 열악한 노동조건은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여전히 연 3만 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강제로 출국 당하고 작업장에서는 욕설과 구타, 성추행과 임금체불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정부는 말로만 사회통합을 외칠 게 아니라, 다문화ㆍ다인종 사회로 급변하는 한국사회의 지형변화를 절감하고 실질적인 이민행정을 펼쳐야 할 때다. 이에 <매일일보>이 이주노동자, 이주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정부는 내년 1월 1일부터 산업연수생제도를 폐지하고 고용허가제도를 전면적으로 시행할 방침이다. 이는 인력난에 시달리는 인천, 안산 등지의 주요 생산단지에 활기를 불어 넣고 치열한 국제경쟁시대에 외국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고용허가제가 시행되면 이주 노동자의 노동3권이 확실히 보장되고 입출국이 자유로워진다. 또한 고용된 이주노동자를 관리ㆍ감독 시스템도 공공성과 투명성 면에서 향상될 것으로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들은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양이 아니라 질이다. 고국의 가족과 생이별을 감수하며 5백만 원에 가까운 브로커 알선비를 지불하고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한국의 일터는 멸시와 폭행, 임금체불이 만연한 곳일 뿐이다. 또한 풍요롭고 화목한 가정의 행복을 꿈꾸며 한국 남성들과 결혼한 아시아계 이주여성들의 설움과 핍박은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는 실정이다.

연 10만 명의 아시아계 여성들이 결혼을 위해 입국하고 5천여 명의 다인종 자녀가 태어나고, 35만 이주노동자가 전국 각지의 생산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이국 땅 한국. 그러나 그들의 삶은 고단하기 짝이 없다.

불신검문이 두려워 대중교통 엄두 못 내

서른 살 쉐르윈씨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2002년 10월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입국했다. 부인과 네 명의 자식들을 고국에 남겨 놓고 지난 4년간 인천과 부천 지역의 공장에서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러다 작년 7월부로 비자가 만료되면서 불법체류자 신분이 됐다.

마닐라로 돌아가도 일거리가 없는 절박한 고국의 상황, 처자식을 먹어 살려야 겠다는 일념으로 그는 인천 청천동의 달동네에서 단칸방 생활을 이어갔다. 수입의 절반(50만원)을 고국으로 송금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던 쉐르윈씨는 지난 9일 뜻하지 않은 접촉사고로 신분이 노출되면서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출입국관리소 직원과 경찰의 무작위 불신검문이 두려워 전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할 수 가 없다고 한 쉐르윈씨. 중고 승용차를 동료의 명의로 구입해 비좁은 골목길에서 경미한 사고를 낸 것이 화근이었다. 경찰에 체포된 그는 “제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게 해 달라”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출입국관리소로 인계된 그의 주머니엔 미처 받지 못한 임금 명세서와 여권이 전부였다.

낯선 환경, 고향에 두고 온 자식들 생각에 밤잠 설쳐

중국 연변 출신인 세른 네 살 홍모씨는 지난 3월 500만원의 입국 알선비를 치르고 한국에 들어왔다. 부산의 한 섬유회사에 취직하여 빚도 갚고 돈도 벌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이튿날부터 열심히 일했다. 낯선 환경과 고향에 두고 온 자식들 생각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잔업과 주말 근무도 불사하고 일했지만 첫 월급은 고작 51만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하고 소음과 먼지로 가득한 공장 생활을 이어갔다. 

몸이 상하는 걸 감수하며 잔업량과 휴일 근무도 늘렸지만 급여는 50만 원대를 맴돌 뿐이었다. 생계비를 제외하고 송금하는 돈으로는 알선비 때문에 빌린 돈의 이자를 갚기에도 부족했다. 이에 홍씨는 공장 간부의 욕설과 회유를 감수하고 부산을 떠나 서울 영등포의 한 식당에서 일하게 된다.

 “첨엔 80만원 받고 일했습니다. 근데 가만 보니까 따른 분들은(한국인) 150만원이나 받는게 아니겠습니까. 서러웠슴메다. 그래서 일은 힘들어도 100만원이라도 주는 식당으로 옮겠슴네다.”

그녀는 80만원으로 월세비 30만원과 최소 생계비 20만을 제외하고 나머지 30만원을 중국으로 꼬박꼬박 송금했다. 하지만 목표한 액수의 돈을 마련하기에 1년이란 시간은 턱없이 짧았다. 숙식이 가능한 식당을 찾아 다녔지만 흑심이 가득한 사장들은 그녀와 잠자리를 요구했다.

또 능숙하지 못한 한국어 실력 때문에 손님들과 사장에게 면박 당하기도 일쑤였다. 내년 3월이면 합법적인 체류기간이 끝나는 홍씨.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떠날 수 없다’고 말한 그녀는 씁쓸한 표정으로 주방으로 사라졌다.

스물한 살 베트남인 D씨는 ‘남편이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재산까지 많다’는 결혼중계업소의 말을 믿고 박모씨(34ㆍ자영업)와 결혼했다. 하지만 ‘한국말을 잘 못하고 멍청하다’는 이유로 박씨는 그녀에게 심한 욕설을 퍼붓고 폭행을 일삼았다.

술이 만취한 날이면 강제로 잠자리를 요구하기도 했다. 고통스러운 현실에 D씨는 남편과 헤어질 것을 결심했으나 박씨는 합의이혼을 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한다.

이와 관련 인천의 한 여성쉼터 관계자는 “30%이상의 결혼 이주여성이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고 80%이상이 일상적인 폭언 등에 노출되어 있다”고 상황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그는 또 상견례 자리에서는 끔찍이도 자상하고 신사적이던 한국 남성들이 결혼 후 이들을 자신의 노예나 성적 노리게 쯤으로 대하고 있어 ‘파행적인 성혼과정’에 정부의 적극적인 제재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사정은 지방도 마찬가지다. 경북여성정책개발원에 따르면 경북도 내 결혼이민자 356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결혼한 이주여성 4명중 1명이 ‘이혼을 고려해 본 적 있다’고 했으며 3명 중 2명은 한국남자와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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