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회, 민주노동당을 공작 기지로 삼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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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회, 민주노동당을 공작 기지로 삼았나?
  • 김종국 기자
  • 승인 2006.12.18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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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15 이후 최대 간첩사건, 대선 앞두고 결국 ‘터졌다’

참여정부에는 없을 것만 같았던 간첩단 사건이 대선을 1년 여 앞두고 ‘결국’ 터지고 말았다. 386 운동권 출신들이 연루된 간첩단 이야기, 이른바 ‘일심회’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이 사건은 ‘6ㆍ15 공동선언 이후 최대간첩사건’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검찰은 지난 10월26일부터 이 사건에 대한 수사에 돌입했고, 약 30여일에 걸친 수사를 통해 일심회 사건의 윤곽을 밝혀냈다. 그러나 큰 그림을 그려낼 것만 같았던 검찰 수사는 종착지를 앞두고 소강상태에 빠졌다. 간첩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들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포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피의자들은 여전히 묵비권을 행사하며 혐의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또 피의자 가족들과 민변, 시민사회단체, 노동계, 정치권 일부에서는 “보수세력이 대선을 앞두고 의도적으로 부풀린 공안탄압”이라고 주장하면서 검찰 수사에 제동을 걸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수사를 끝까지 마무리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매일일보>에서 지금까지 진행된 일심회 사건에 대해 검찰 수사 결과를 토대로 그 전말을 짚어봤다.

검찰은 지난 8일 수사진행 상황에 대한 중간발표를 했다. 이 발표에 따르면, 국가보안법 제6조 잠입ㆍ탈출과 제8조 회합ㆍ통신죄를 위반한 혐의로 구속된 사람은 장민호(44ㆍ총책), 이정훈(43ㆍ민노당 전 중앙위원), 이진강(43ㆍ회사원) 그리고 손정목(42ㆍ장민호 후배)과 최기영(40ㆍ민노당 사무총장) 등 총 5명이다. 이들은 일심회 핵심인물로 꼽힌다.

검찰은 장기간에 걸친 수사를 통해 검거된 5명의 일심회 조직원들을 간첩으로 확신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결과에 대한 최종발표가 되지 않은터라 일각으로부터는 '이번 간첩단 사건은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 내 386세력과 민노당 흠집 내기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있다.

앞으로 공안당국의 최종 수사 결과가 발표되면 일심회의 전모가 드러나겠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Fact(사실)는 지금까지 알려진 간첩 사건과는 그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핵심인물 장민호, 북한에 “돈 달라”

우선 일심회 사건의 열쇠를 쥔 장민호씨.

그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재미교포로 모 정보통신업체의 사장이었다. 일심회 조직의 총책으로 불리는 그는 북한의 지령을 접수하고 조직원으로부터 수집된 남측의 정보를 북에 보고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지난 1989년 친북교포 김모씨의 소개로 그해 첫 밀입북을 시도한 장씨는 “지하당 조직을 구축하라”라는 북측의 지령을 받고, 몇 년 뒤 귀국해 주한 미군에 입대했다. 그는 용산 등지의 부대에서 근무하며 국내 첩보 활동을 시작했다.

93년 그는 2차 방북에 성공했다. 그리고 북한에서 ‘충성서약’을 작성하고 조선노동당에 정식으로 입당했다. 장씨는 방북 전 평소 통일사업 단체 활동을 꿈꿔왔는데 결국 그는 98년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가 북한 공작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통일운동을 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이에 북한 공작원은 장씨에게 “통일운동을 하고 싶다면 먼저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남한 동향을 파악해서 알려달라”고 지시했다.

그는 이에 따라 같은 해 한민전(한국민족민주전선) 강령을 토대로 ‘일심회’ 구성한다. 장씨는 중국 베이징의 동욱화원 지역에 아지트를 마련하고 북한의 대외연락부 소속 유모씨, 김모씨 등의 북한 공작원을 만나 수차례 교육을 받았다.

검찰에 따르면, 장씨는 손정목 이외에 99년부터 이진강을 시작으로 이정훈(2000년), 최기영(2003년)을 일심회 조직원으로 포섭했다. 앞서 2001년에는 중국 베이징의 아지트에서 북측 대외연락부 과장으로부터 3000달러의 공작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장씨는 지난해 지상파 이동멀티미디어방송(DMB) 사업이 실패하면서 3억원 가량의 빛에 시달리게 된다. 결국 그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질 것 같다”며 북한에 금전적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지령전달받고, 전자우편으로 보고하고

장씨의 하부조직원인 이진강(43)씨는 시민단체의 동향을 수집 및 보고하고, 지난해 11월께 일심회 하부 조직인 ‘백두회’를 조직하여 친북세력을 결집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장씨가 운영하는 회사를 다녔다.

장씨의 Y고 고교후배로 알려진 손정목(42)씨는 97년 동문회에서 장씨를 만나 일심회 구성에 참여했다. 손씨는 민노당 중앙당의 내부동향을 파악ㆍ수집하고 조직의 확대를 위해 활동한 것으로 검찰조사 결과 밝혀졌다.또 98년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북한 대외연락부로부터 2000달러를 공작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민주노동당(민노당)의 주요 당직자 신상유출과 관련해 물의를 일으켰던 최기영(40) 민노당 사무총장은 당의 활동 계획을 수집ㆍ보고하고 당 내 친북세력을 조직한 혐의를 받고 있다.

80년대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사무국장 출신이기도 한 그는 주요 당직자 350여명의 신상 정보와 지난 10월 북한을 방문한 민노당 대표단 13명의 성향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이밖에 민노당 서울시당의 내부동향 파악을 책임지고 있는 이정훈(43)씨는 민노당 서울시 대의원 중 한명으로 85년 고려대 삼민투(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 투쟁위원회) 위원장이었다. 이씨는 04년 5월 서울시 단위 조직사업으로 ‘선군정치동지회’ 및 ‘8ㆍ25 동지회’의 결성을 선도하고 일심회 하부조직 배치 계획서를 북에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우리 사회 곳곳의 일, 소상히 북에 보고

일심회가 북한에 보낸 보고 문건을 공안당국이 정밀하게 분석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보고서는 주로 국내외 정세 분석을 다루고 있으며 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영역을 총괄하고 있다.

일심회가 작성한 민노당 방북대표단 성향 보고서에는 “000은 요주의 대상 1호”, “000은 북에 할 말은 하겠다는 뚝심 있는 운동가 스타일”, “000은 직설적으로 주장을 펼친다”는 세부내용 담겨있다.

또 민노당 최고위원회 및 의원단 총회의 각종 회의자료가 북한에 보고된 것으로 파악됐으며 평택 미군기지의 이전 사항, 의정부 여중생 사망사건, 한미 FTA 협상 등 일반적인 정보에서부터 개성공단 진출기업에 관한 통일부 자료, 여당이 작성한 청와대 여야 원내대표 만찬회동 전략서 등 정치권 내사를 불러 온 고급정보도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윤광웅 국방부장관 해임결의안 무산 경위 등 국군과 관련된 정보가 누출되기도 했다. 또 2004년 11월 남재준 전 육군참모총장 등 대북 강경파인 군 수뇌부가 인사비리로 영향력이 퇴조되고 있다는 보고서를 작성하고 군내 대북 강경파들의 동향 및 역학 관계도 보고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밖에 05년 11월에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김원기 전 국회의장이 국회에서 대화한 내용과 미핵잠수함 진해 입항 사실도 사전에 보고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장씨가 소장하던 문건에는 “한나라당에선 과거사 청산과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를 놓고 소장파와 중진 간 당내 갈등이 양극화되고 있다”, “미국 정부가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의 무장해체를 유도하려 한다”는 내용과 6자 회담이 실패할 경우 미군을 규탄하고 반전 투쟁을 하라는 지령도 있었다.

총론격인 내용도 있었는데 “사법 권력과 언론권력에서만 변화가 있으면 주류 사회가 붕괴될 것”이라는 분석이 바로 그 것이다.

PC방에서 이메일로 북한과 교신

검찰 조사 결과 장씨는 외국에 서버를 두고 집과 회사, PC방에서 이메일로 북한과 교신했으며 단파 라디오를 통해 북한의 지령을 받기도 했다.

암호 해독용 CD로 수신 내용을 풀 지 못할 경우엔 북측에 ‘수신실패’를 보고하고 새 음어표를 다시 제공받았는데 음어표에는 서울은 ‘워싱톤’으로 베이징은 ‘도쿄’로 태국은 ‘멕시코’ 등으로 표기 돼 있었다.
지방선거나 국회의원 총선거는 ‘이사회’로, 해외 접선은 ‘방문’. 북한 방문은 ‘별장’으로 쓰도록 지시돼 있기도 했다.

만약 서울에서 베이징을 거쳐 태국에 있는 북한 공작원과 접촉하겠다는 표현이 있다면 이것은 ‘미국 워싱톤에서 일본 도쿄를 거쳐 멕시코를 방문하겠다’는 식이다.

또한 일심회 조직원이 중국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선을 하던 중 암호를 기억하지 못해 혼선이 빚어지자 장씨는 북측에 반성문을 보내기도 했다.

공작원 접선 전에는 상황별 시나리오 교육을 하는 정교함을 보였는데, 접선 시에는 영어로된 암구호를 사용했다. 북측 공작원이 “Where can I buy a newspaper?”라고 물으면 “It's over there”라고 답변해야 접촉 가능하며, “00회사에서 오셨습니까?”라고 물의면 “아니오, 00에서 왔습니다” “실례했습니다”라고 해야 지령을 받을 수 있었다.

그밖에 신문지를 말아 쥐고 있는 사람과 접촉하되 만약 신문지를 찢으면 문제 상황이 발생한 것으로 교육했다. 한편 장씨는 다른 조직원이 북한과 교신ㆍ접선에 실패하자 “송구스러워 벽에 머리를 처박고 싶은 심정”이라는 일종의 반성문을 쓰기도 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공안당국 “6.15 이후 최대 간첩사건”

공안당국은 이번 사건을 ‘6ㆍ15공동선언 이후 최대 간첩사건’으로 규정하고 수사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중간수사를 마친 공안당국 관계자는 “1차 하부조직원을 이용해 특정 정당과 시민단체 영향력을 행사하려던 정황을 포착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여당과 청와대 관련된 정보도 있어 수사를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선을 염두에 둔 한나라당은 공안당국의 조사가 철저하게 규명돼지 않는다면 국회 차원의 수사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민노당은 지난 10일까지 공식적 사과도 없이 침묵으로 일관해 당원과 네티즌의 비난이 빗발쳤다. 민노당은 곧바로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이해삼)를 구성했는데, 이들은 여전히 “아직까지 관련 물증이 적어 당은 침착하고 냉정하게 현 사태를 대처해 나갈 것”이라며 신중한 반응이다.

시민단체도 민노당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는 이번 사건을 ‘대표적인 인권 침해 및 편파 보도 사례’로 지적하고 일부 보수언론와 수구세력들이 시민사회단체와 386 인사들을 공공의 적으로 몰아가, 공안 정국을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일각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수집 가능한 정보를 국가기밀로 보는 것은 우스운 것이라며 공안기관의 간첩혐의 관련 증거에 비난을 퍼붓고 있다.

또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는 한 활동가는 “연간 중국을 방문하는 사람이 300만명 넘고,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하는 사람이 수십만인데, 북한 사람과 만나기만 하면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누구든지 걸릴 수 있다”며 검찰의 일심회 사건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어쨌든 검찰의 수사가 앞으로 진행되면서 일심회가 어떤 식으로 여당과 청와대 인물들과 접촉했고, 또 고급정보의 출처와 수천만 달러의 공작금의 사용처, 여당 및 시민단체의 관련 인물 등 쟁점 사안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날 전망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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