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안도현 동시집 '기러기는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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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안도현 동시집 '기러기는 차갑다'
  • 김종혁 기자
  • 승인 2016.09.26 1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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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김종혁 기자] 우리 시대의 시인, 안도현이 세번째 동시집 『기러기는 차갑다』(문학동네)'를 펴냈다.

안도현의 시를 향한 독자들의 공감과 사랑은 세대를 이으며 나날이 깊어져 왔다. 독자들이 어떤 시인에 대하여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친밀한 유대감과 신뢰감을 쌓아 온 경우는 결코 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그가 10여 년 간 동심 속을 거닐며 써 모은 시 46편을 묶어 내놓았다. 첫 동시집 『나무 잎사귀 뒤쪽 마을』(2007, 실천문학사)과 음식을 소재로 한 다양한 말놀이 동시 『냠냠』(2010 비룡소)에 이어 세 번째로 펴내는 동시집 『기러기는 차갑다』이다.

다섯 부로 구성된 이번 동시집 속에는  △자연의 삶 속에서 발견한 경이로운 순간을 포착한 시,  △오늘의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마음을 조용히 들여다보며 얻은 시,  △가족이나 친구 사이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음악에 귀 기울인 시,  △나무처럼 산처럼 벌떡 일어서는 어린것들의 생명력을 노래한 시,  △웃음을 자아내는 말놀이 동시와 구불텅거리며 흘러가는 서사의 재미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이야기, 동시까지 다양하고 풍성하게 담겨 있다.

동시라는 문학의 갈래가 품어 보여 줄 수 있는 따스한 서정과 서늘한 트임의 순간이 교차하며 일구어내는 물이랑이 읽는 이의 가슴을 끊임없이 두드린다.

동심의 배꼽에서 욜랑욜랑 태어난 노래, 동시의 정수

여치가/ 찌릿찌릿/ 울고 있었다

여치 울음소리가/ 새어 나오는 곳을/ 나는 눈으로 보고 싶었다

풀밭은 넓었고/ 마을은 정전이 되어/ 어두웠다//

찌릿찌릿/여치가 울면서/ 전기 만드는 발전소를/ 나는 눈으로 보고 싶었다

_「저녁 무렵」 전문

책의 첫머리에 놓인 시 '저녁 무렵'은 '기러기는 차갑다' 전체를 관통하는 시인의 눈이 향하는 곳이 어디인가를 은유하는 작품이다.

아침도 낮도 아닌 저녁인 데다 그것도 무렵, 저녁이 아주 온 것도 아닌 아직은 밝음의 기미가 남아 있는 시간에 마을은 정전이 되어 어둡고, 화자는 여치가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를 보고 싶어 한다.

화자는 왜 하필 풀밭에 사는 여치가 전기를 만든다고 생각하는 걸까. 해설을 쓴 시인 유강희는 “그렇게 여린 존재들이 세상의 어둠을 밀어내는 굳센 힘이자 사랑이라고 믿는 건 아닐까. 시인은 어쩌면 그런 연약한 존재들이 ‘찌릿찌릿’ 울면서 만드는 전기로 어둠의 정원을 밝히고 싶었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이어 낮밤의 경계, 어른들이 만든 이분법적 세계가 아닌 깊은 허방으로서의 그 틈을 안도현 동시가 태어나는 곳, 곧 ‘동심의 배꼽’이라 명명한다.

그곳에서 시인은 나이테를 보면서 “네 손을 처음 잡았던 날” 몸 안에서 밖으로 퍼져 나간 “징 소리”를 듣고(「나이테」), 매달려 있는 고드름에게서 “떨어지지 않겠다”는 중대한 결심을 발굴해 내고(「고드름」), 염소 뿔이 하나뿐이면 “심심할 것 같아서” (「뿔」)얼른 하나 더 달아 주기도 한다.

-기러기가 왜 차갑지?

기러기가 왜 차갑지? 하고/ 나한테 물어봐 줘/ 내가 말해 줄게//

겨울이 왔잖아/ 기러기는 겨울에 날아오잖아/ 멀리, 멀리, 멀리

북쪽에서 날아오니까/ 기러기는 차가운 거지/ 텅, 텅, 텅

빈 공중을 날아오느라/ 기러기는 차가운 거지

「기러기는 차갑다」 부분

유강희는 해설에서, ‘기러기는 차갑다’라는 이 단순한 명제가 오히려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차갑다’라는 형용사가 먼 북쪽에서 날아오는 기러기의 외롭고 힘든 노정을 어떤 복잡한 개념의 외피를 통하지 않고 감각의 절실한 느낌 그대로를 드러내기 위해 길어 올린 단 한 마디 말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저 기러기/ 집에 데려와서 기르자/ 날개 밑에 손을 넣어

따스하게 만져 주자/ 언 강물 풀리면/ 물갈퀴도 빌리자

기러기가 왜 차가운가에 대한 한 차례 문답 뒤에 이어지는 것은 다시 동심의 무늬이다. 시 속의 아이는 그러한 연유로 차가워진 기러기의 날개 밑에 손을 넣어 따스하게 만져 주고 싶어한다. 언 강물이 풀리면 물갈퀴도 빌려 같이 놀고 싶다. 우리는 이런 마음을 만나기 위해서 동시집을 손에 든다.

 자기들끼리 흔들리고 키득거리고 반짝이는 존재들을 향하여

“초등학생들 앞에서 말을 할 때는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할 수밖에 없다. 꽃밭에서 꽃들의 귀에 대고 혼자 말하는 것이므로. 꽃들은 자기들끼리 흔들리고 키득거리고 반짝이는 존재다. 내 말은 아이들에게 지나가는 바람 소리일 것이다.”

시인은 어느 신문에 실은 글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다른 어떤 청중들보다도 시인을 어렵게 만드는 아이들을 만나러, 농촌의 어느 초등학교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그때 악수를 청해 온 아이들의 손을 맞잡은 일에 대해서는 또 이렇게 말했다. “그 손들은 억세지 않았고 두껍지 않았고 욕심이 없었고 헐렁했고 가벼워서 마치 허공을 한 번씩 잡는 것 같았다.”

시인은 아이들을 동시의 단순한 독자가 아니라 제각기 시심을 가진 시인으로 여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기가 경험한 감정을 언어로 구체화하는 능력이 뛰어나며 이것은 시를 쓰는 기술 이전에 생성된 선험적인 힘이라는 것이다.

‘책머리에’에서 시인은 오래전 1학년 아이들에게 엄마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 다섯 가지를 듣고 써 오라는 숙제를 내 주었던 일을 떠올린다. TV 좀 그만 봐라, 학원 갔다 왔니, 너무도 뻔한 문장들에 실망하고 있는데 한 아이가 큼지막하게 써 낸 다섯 글자를 보고 놀라고 말았다.

‘꼴배기시러.’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무시한 이 다섯 글자에 시인은 감탄했다. 이 아이는 정말 엄마의 말을 자세히 듣고 또 들은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남들과 다르게 듣고 남들과 다르게 보는 일, 그게 시를 쓰는 일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이런 마음으로 아이들 곁에 선 시인이기에 그의 세 번째 동시집은 꽃들 앞에 서서 사람의 말을 늘어놓는 어른의 목소리가 아니라 꽃잎 사이사이를 기분 좋게 흔들어 놓는 ‘바람 소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이 재직하는 우석대학교 문창과의 전통 하나를 사족으로 붙인다. 시인은 학기초마다 한 묶음 프린트물을 나눠주며 수업을 이끄는데 놀랍게도 프린트물의 제목은 '시어(詩語)써서 안돼는 낱말 모음집'이다. 언젠가 한 일간신문에 연재하며 담금질했던 내용인데 제자들은 금과옥조로 여긴다는 후문.

[작가 소개]

시 안도현

196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금까지 쓴 책으로 시집 『그대에게 가고 싶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 『북항』 등이 있고 동시집 『나무 잎사귀 뒤쪽 마을』 『냠냠』을 펴냈다. 『백석 평전』 『잡문』 『그런 일』 등의 산문과 『연어』 『관계』 등의 어른을 위한 동화도 썼다.

그림 유준재

홍익대학에서 섬유미술을 공부했고 2007년 ‘동물 농장’으로 제15회 노마 콩쿠르에 입상했다. 그림책 『마이볼』 『엄마 꿈속에서』 『파란파도』를 쓰고 그렸고, 동화 『소년왕』 『가오리가 된 민희』 『화성에 간 내 동생』 『통조림 학원』 『아토믹스 지구를 지키는 소년』 등에 그림을 그렸다.

 기러기는 차갑다  | 안도현 시 | 유준재 그림 | 112쪽 | 10,500원 | 문학동네

 

 


좌우명 : 아무리 얇게 저며도 양면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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