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제살만 깎아내린 제약업계, 리베이트 근절 대책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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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제살만 깎아내린 제약업계, 리베이트 근절 대책은 어디에
  • 김형규 기자
  • 승인 2016.09.07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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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회부 김형규 차장

[매일일보 김형규 기자] 지난달 말 한국제약협회 이사회에서는 유례없는 무기명 설문조사를 했다. 설문조사 내용은 ‘어느 제약사가 불법 리베이트를 가장 많이 했냐’는 것이다.

복지부에서는 2014년 국내 제약업계가 글로벌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불법 리베이트 영업이 반드시 근절돼야한다며 ‘리베이트 쌍벌제’ 등을 도입했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제약회사에서는 불법 리베이트 영업을 감행한 사실이 드러났으며, 업계에서도 불법·편법 영업을 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제약협회 이사회는 썩은 살을 스스로 도려낸다는 심정으로 한 이번 조사를 실시했으며, 결과는 내부적으로만 공유하기로 했다. 설문조사에는 50개 이사사 중 44개 대표가 참여했고, 다수로부터 지목된 제약사 한 곳의 명단이 내부 공개됐다.

이사회 직후부터 불법영업 의심 업체로 지목된 제약사에 관심이 집중됐고, 그 제약사뿐만 아니라 표를 받은 다른 제약사도 거론됐다.

제약담당 기자들 사이에서도 ‘A제약사다’ ‘아니다 B사일 것이다’는 등 근거 없는 소문이 확산됐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리는 없겠지만 경쟁 제약사를 적어낸 기업도 있을 것이고, 근거 없는 소문과 심증으로만 지목된 기업도 있을 것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수사권이나 처벌권한도 없는 제약협회에서 설문조사를 통해 ‘리베이트 기업’으로 낙인을 찍는 것에 못 마땅해 하는 분위기다. 더욱이 조사에서 거론됐던 기업들은 2차 피해도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번 설문조사는 이사회 내부에서만 공유한다고 비밀 유지 서약도 했지만 조사에서 거론됐던 기업은 지인을 통해 알음알음 공개된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업계에서도 이미 소문이 확산돼 특정 업체는 근거도 없이 마녀사냥식으로 몰릴 처지에 놓였다. 소문과 심증 그리고 경쟁 업체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제약협회에서는 불법 영업 근절을 위해 유예기간 등을 부여하고 지속적으로 자정 노력을 했지만 시정되지 않아 불가피한 선택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파장은 범위를 벗어났다.

불법적인 리베이트를 근절하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하지만 제약협회에서는 이번과 같은 무기명 투표에 의한 공개에는 좀 더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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