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대 헌종성황제 · 효현성황후 · 효정성황후 경릉(景陵)
상태바
제24대 헌종성황제 · 효현성황후 · 효정성황후 경릉(景陵)
  • 김종혁 기자
  • 승인 2016.08.26 14: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선왕릉중 유일하게 병풍석이 생략된 삼연릉(三連陵) 형식

[매일일보 김종혁 기자] 경릉은 조선 24대 헌종성황제와 첫 번째 왕비 효현성황후 김씨, 두 번째 왕비 효정성황후 홍씨의 능이다.

조선왕릉중 유일한 삼연릉으로 조성된 경릉 능침. 병풍석없이 난간석을 연결했고 혼유석 3좌를 배치했다.

경릉은 세 개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삼연릉(三連陵)의 형태로 조선왕릉 중 유일하다.

정자각 앞쪽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이 헌종, 가운데가 효현성황후, 오른쪽이 효정성황후의 능이다.

세 봉분은 모두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을 둘렀으며, 난간석이 서로 연결돼 있다.

각 봉분 앞에는 혼유석을 따로 설치했다.
능침 아래에는 정자각, 비각, 홍살문, 판위 등이 배치됐으며, 비각에는 한 개의 표석이 있다. 표석은 대한제국 선포 후 황제 추존으로 바꾼 표석으로, 전면에는 ‘대한 헌종성황제 경릉 효현성황후 부좌 효정성황후 부좌’라 써있다.

능의 역사

경릉문무석인

처음 경릉자리는 선조의 목릉(穆陵)이 있던 자리였는데, 1630년(인조 8년)에 목릉에 물길이 있고 풍수상 불길하다는 심명세의 상소로 목릉천장을 확정하고 구릉을 파고 현궁을 열어 보니 물기가 없어 그의 불길론은 해소됐다.

이 후 헌종의 첫 번째 왕비 효현성황후 김씨가 1843년(헌종 9년)에 세상을 떠나, 현재의 자리에 처음 능을 조성했다.

6년 뒤인 1849년에 헌종이 세상을 떠나자, 13곳의 택지를 간심한 끝에 ‘십전대길지(十全大吉地)’의 명당이라고 주장한 효현성황후의 경릉 오른쪽에 능을 조성했다.

대한제국 선포 후 1904년(광무 8년)에 헌종의 두 번째 왕비 효정성황후 홍씨가 세상을 떠나 현재의 자리에 능을 조성했다.

헌종성황제(憲宗成皇帝) 이야기

헌종(1827~1849)은 추존 문조와 신정황후 조씨의 아들로 1827년(순조 27년)에 창경궁 경춘전에서 태어났다.

경릉 정자각

1830년(순조 30년)에 왕세손으로 책봉되고, 1834년에 순조가 승하하자 왕위에 올랐다.

8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 할머니인 순원황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실시했다.

헌종 연간은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가 서로 대립해 두 차례의 역모 사건이 일어났으며 , 삼정(전정, 군정, 환곡)의 문란으로 백성들이 큰 부담을 안고 살아가던 시기였다.

또 천주교 탄압(기해박해)으로 인해 외국 군함이 처음으로 조선 근해에 나타나 민심이 흉흉했다. 친정 후에는 '동문휘고', '열성지장', '동국사략', '삼조보감'등을 완성했으며, 각 도에 제언을 수축하게 하는 등의 치적을 쌓았다.

그 후 1849년(헌종 15년)에 창덕궁 중희당에서 23세로 세상을 떠났다. 1908년(융희 2년)에 헌종성황제로 추존됐다.
1837년(헌종 3년)에 효현성황후를 왕비로 맞이했으나, 6년 뒤에 소생 없이 세상을 떠났다.

그 후 두 번째 왕비를 맞아들이기 위해 스스로 간택에 참여했는데, 이는 왕이 간택에 직접 참여한 유일한 예였다.

헌종은 김씨 여인을 마음에 두고 있었으나 간택의 최종 결정권은 왕실의 어른인 대왕대비에게 있었고, 김씨 여인이 아닌 홍재룡의 딸 효정성황후가 최종 간택되어 왕비로 책봉됐다.

이에 헌종은 3년을 고심한 끝에 왕비가 후사를 생산할 가능성이 없다는 핑계로 대왕대비의 허락을 받아 삼간택에서 낙선한 김씨를 후궁으로 간택했다.

헌종은 경빈 김씨를 위해 1847년(헌종 13년) 창덕궁 서쪽에 별궁인 낙선재를 지어줬다. 예술을 사랑한 헌종은 경빈 김씨와 함께 이 별궁에서 고금 명가의 유필을 벗 삼아 지내기를 좋아했다. 낙선재에 여러 차례 불려 들어갔던 조선 후기 서화가 소치 허유(許維)의 기록에는 낙선재는 헌종이 평상시 거처하는 곳이며,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쓰여진 현판이 가득하다는 등의 묘사가 잘 드러나 있다.

효현성황후(孝顯成皇后) 이야기

헌종의 첫 번째 왕비 효현황후 김씨(1828~1843)는 본관이 안동인 영흥부원군 김조근과 한성부부인 이씨의 딸로 1828년(순조 28년)에 안국방(현 서울 안국동) 외가사저에서 태어났다. 1837년(헌종 3년)에 왕비로 책봉됐으나 헌종 사이에 후사를 낳지 못했다.

1843년(헌종 9년)에 창덕궁 대조전에서 16세로 세상을 떠났다. 1908년(융희 2년)에 효현성황후로 추존됐다.

최초의 태후, 효정성황후(孝定成皇后) 이야기

헌종의 두 번째 왕비 효정황후 홍씨(1831~1904)는 본관이 남양인 익풍부원군 홍재룡과 연창부부인 안씨의 딸로 1831년(순조 31년)에 함열현(현 전북 익산) 관사에서 태어났다.

1843년에 헌종의 첫 번째 왕비가 승하하자 1년 뒤에 헌종의 두 번째 왕비로 책봉됐다. 헌종이 승하하고 철종이 즉위하자 명헌대비가 되고, 1859년(철종 10년)에 왕대비가 됐다.

이 후 왕실의 어른으로 지내다가 1897년(광무 1년)에 대한제국이 선포되면서 최초의 태후가 됐다. 헌종 사이에 소생을 낳지 못했으며, 1904년(광무 7년) 양력 1월 2일에 경운궁 수인당에서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1908년(융희 2년)에 효정성황후로 추존됐다. <사진,자료출처=문화재청,조선왕릉관리소,공공누리집>

 


좌우명 : 아무리 얇게 저며도 양면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