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想] 선진 대한민국의 ‘사람 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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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想] 선진 대한민국의 ‘사람 값’
  • 김경탁 기자
  • 승인 2016.06.12 13:1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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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탁 편집부장

[매일일보] 아침저녁 출퇴근길, 만원 버스·만원 전철에 몸을 실을 때면 화물트럭에 촘촘히 쌓인 짐짝처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낯선 이들과 몸과 호흡을 부대끼면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곳으로 이동하는 모습에 문득 “대도시에서의 삶이란 참 ‘몰인권적’이구나”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동물보호단체들이 ‘너무 잔인하고 비참하다’ 비난하는 식육용 개·돼지 사육장이나 닭 집단 산란장은 명함도 못 내밀 높은 밀도 속에서 제 정신을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몸은 그대로여도 영혼이나마 스마트폰 화면 속으로 떠나보내는 것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

어떤 이들은 강한 생명력(?)으로 남들보다 자리를 먼저 차지하는 ‘아줌마’들을 향해 증오감을 표출하는 식으로 상황에 대한 내적 분노를 삭인다.

아줌마에 대한 증오는 이른바 ‘김 여사’로 통칭되는 미숙련 여성운전자에게 확장되며 그런 식의 확장 끝에 만나게 되는 것이 ‘여혐’이다.

사람이 ‘물자’ 취급받는 사회 시스템 자체를 정면으로 바라보기보다 ‘희생양’을 찾는 것은 개인의 입장에서 합리적인 선택이다. 시스템은 너무 막강해 보여서 개인이 어찌해볼 수 없는 일종의 ‘숙명’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전입신고를 하지 않은 대학생, 각종 입시수험생, 임시 거주자, 불법체류자 등은 빠진 ‘통계’로만 전체 인구의 절반인 2500만여명이 국토 면적의 11%에 불과한 수도권에 다닥다닥 몰려 사는 상황을 바꾸려 시도했다가 좌절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를 봐도 그렇다.

2004년 10월 ‘경국대전’을 인용했던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 위헌 판결 이후, 세상은 영원히 달라지지 않을 것 같고 강고한 사회 시스템을 바꿔보려 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처럼 무모하고 무의미한 시간낭비처럼 느껴졌다. 불과 두 달 전까지는 말이다.

최근 뉴스의 중심에 있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필자가 4~5년 전부터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다뤄왔던 이슈이다.

새 소식이 나올 때마다 직접 쓰거나 후배 기자에게 전달해 처리하는 식으로 기사화를 해왔다. 하지만 그 엽기성과 충격도에 비해 전혀 공론화는 되지 않았다.

정부가 2013년에 이미 인정했던 가습기 살균제와 폐손상 사이의 연관성을 검찰에서 3년이 훌쩍 넘어간 올해 4월 초에서야 ‘정황 확인’이라 발표했을 때까지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분위기가 돌연 바뀐 것은 20대 총선 결과가 나온 4월 중순부터였다.

영원히 묻힐 것만 같던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갑자기 미친 듯한 속도로 전개되더니 예전이면 조용히 넘어갔을 ‘삼성역 묻지마 살인’이나, 똑같은 사고가 두 번이나 일어났음에도 아무것도 변한 것 없이 묻혔던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가 뉴스의 중심에 떠올랐다.

세월호 문제를 필두로 '밀린 숙제'는 여전히 산처럼 쌓여 있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목숨 값, 사람값이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을 향해 올라가는 분위기이다.

16년만의 여소야대라는 20대 국회는 아직 아무런 활동을 한 것이 없는데, 그 존재감만으로 이렇게 세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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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비 2016-06-13 10:53:29
이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모두의 슬픈 자화상.
바뀌겠지요. 선거의 힘을 느끼게 하는 요즈음 입니다..
기사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