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이자 엄마, 그리고 가장 ‘장희수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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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이자 엄마, 그리고 가장 ‘장희수의 고백’
  • 이정윤 기자
  • 승인 2016.05.26 14: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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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살 때 TBC 아역으로 연기 시작해
대학 포기, 이혼 겪었지만 오히려 풍부한 연기에 도움
여의도 KBS 본관에서 배우 장희수의 평소 소탈한 성격이 그대로 묻어나는 미소를 보이고 있다. 사진=이정윤 기자 think_uni@

[매일일보 이정윤 기자] 지난 25일 여의도 KBS 본관에서 만난 배우 장희수는 화려했던 지난 봄날의 흩날리는 벚꽃을 다시금 떠오르게 하는 사람이었다. ‘참 곱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최근 MBC 드라마 <마이리틀베이비>, SBS 드라마 <너를 사랑한 시간>, 영화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 등 다양한 장르를 종횡무진 누비는 그녀의 연기 인생은 어릴 적부터 이어져왔다.

워낙 보수적인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그녀는 ‘연예인’이라는 삶을 꿈꾸지도, 꿈꿀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떡잎을 알아본 연기학원을 운영하던 아버지의 친구가 아버지 몰래 그녀를 방송국으로 데려갔다고 한다. 1974년도 당시 TBC에서 방송하던 드라마의 아역으로 출연하면서 연기에 첫 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 장희수.

원래 꿈이 외교관이었던 장희수는 대학에서 1년여 동안 법을 공부했다. 하지만 유복했던 가정환경에서 3남 1녀 중 장녀였던 그녀는 아버지의 병으로 가세가 기울자 동생들에게 대학 공부의 기회를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참가하게 된 것이 바로 ‘제5기 미스롯데’. 대학이라는 어떤 하나를 포기했지만, 연예인의 삶이란 또 다른 하나를 얻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장희수의 배우로서의 삶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후에 KBS 공사 8기로 활동하며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TV 손자병법>, <전설의 고향> 등에서 활약을 시작했다.

순탄할 것만 같았던 배우로서의 삶은 그녀 나이 27살에 위기를 맞았다. 연기 자체에는 자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장희수는 연기 이외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게 참 어렵고 두려웠다고 말했다. 어느 인간관계나 마찬가지겠지만 시기, 질투, 오해와 같은 일들이 반복되면서 실어증까지 겪었다고 고백했다.

연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 중인 배우를 꿈꾸는 이들 앞에서 장희수가 강연을 하고 있다.

연기자 생활을 접을 뻔 했지만 그러던 중 좋은 기회를 만나 KBS 라디오 진행을 하게 됐다. 어찌보면 그녀가 지금까지 여러 방송 MC를 맡고, 가끔은 강연까지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해준 원동력은 라디오 진행 경험이 아니었을까 싶다. 가끔은 그런 활동 때문에 연기자가 아닌 아나운서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이쯤 되자 배우 장희수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장희수, 한 여자로서의 장희수의 삶이 궁금해졌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녀의 삶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아버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함경도 함흥 출신으로 서울에서 철강사업을 운영했던 그녀의 아버지는 수학여행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분이셨다. 그녀는 “어렸을 적엔 그런 아버지의 울타리가 답답하기도 하고 밉기도 했지만 ‘남을 속이려 하지 말고, 내 것이 아니면 돌아보지 마라’ 같은 아버지의 가르침이 아직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인간 장희수를 나약하게 키우지 않았다. 자립심을 키워주고자 19세 이후로 용돈을 준 적이 없다고 한다. 여성스러운 외모 저변에 깔려있는 그녀의 강인함은 이때부터 다져진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인간으로서의 삶에 또 다른 획은 그은 사건은 배우자와의 이별이었다. 이별의 이유에 대해 묻자 “그 사람과 저는 그냥 다른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결혼 전 연애경험이 전혀 없었던 제가 서로 다른 사람이란 걸 몰랐던 거죠”라며 약간은 조심스러운 듯 자신의 마음을 털어놨다.

5년의 결혼생활로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깨물면 안 아픈 손가락이 있겠냐마는 유독 작은 딸보다는 큰 아들에 마음이 쓰인다고 했다. 임신중독으로 그녀의 첫 아이는 폐가 생겨나기도 전에 세상에 나왔다. 아직도 작은 인큐베이터 속에서 가쁘게 숨을 헐떡이던 핏덩이의 모습을 생각하면 너무 안쓰럽다고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이들로 인해 장희수는 배우이자, 엄마이자 그리고 한 집안의 가장으로 살아가야만 했다. 일이 바빠 채워주지 못한 부분, 아빠가 아닌 엄마이기에 해줄 수 없는 부분이 아이들에겐 미안하다고 했지만 한편으론 참 잘 자라준 아이들이 고맙다고 한다.

그런 그녀의 아이들은 남다른 재능으로 해외 유학을 준비 중이다. 큰 아들은 일본에서 성우를 목표로 공부할 계획이고, 음악을 전공한 작은 딸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혼자서 감당해내야 할 아이들 뒷바라지가 걱정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덕분에 일을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다고 한다. 그녀는 “이런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엄마 연기를 좀 더 풍부하게 표현해 낼 수 있지 않나 싶어요.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는 날, 그 날 참았던 눈물을 다 쏟아낼 생각이에요”라는 농담을 던지며 웃어 넘겼다.

얼마 전 종영한 MBC 드라마 <마이리틀베이비> 대본 연습을 하고 있는 배우 장희수. 사진=MBC 제공

장희수가 바라보는 배우라는 직업을 어떨까.

“배우란 사람들에게 ‘쉼표’를 주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해내기 위해선 자기 스스로의 싸움이 엄청나죠. 아직도 연기가 참 어렵고 늘 부족함을 느끼지만 그러면서 발전하는 것 같아요.”

그녀는 앞으로도 가능할 때까지 연기자 생활을 희망했다. “다시 태어나도 연기할 거예요” 라는 말 한마디가 그녀의 삶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통쾌하게 대변했다.

30년 넘게 연기 해왔지만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배우 장희수.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브라운관, 스크린, 무대 등 다양한 곳에서 그녀의 진실된 희로애락을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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