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想] 부끄러운 줄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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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想] 부끄러운 줄 알고 있습니다
  • 김경탁 기자
  • 승인 2016.05.23 11:3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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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23일은 그가 떠난지 7년째 되는 날이다. 노무현재단은 서거 7주기를 맞아 5월 초 새 ’팟캐스트’를 개설했다. 유튜브 등에서 하이라이트 영상으로만 봤던 그의 연설을 편집되지 않은 ‘전문’으로 들을 수 있게 공개한 것이다.

팟캐스트에 들어가자 마자 평소 가장 궁금해 했던 그의 국회의원 당선 후 첫 공식발언, 1988년 7월 8일 ‘제142회 임시국회 대정부질의’를 찾아서 들었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이라는 타이틀로 올라온 이 연설에서 그는 “별로 성실한 답변을 기대하지 않는다”면서 부도덕한 정권의 총리와 장관들을 향해 한마디 한마디마다 움찔움찔할만한 날선 질문을 쏟아냈다. 이 사회의 권세 있는 자들이 왜 그를 싫어하는지 잘 느낄 수 있었다.

팟캐스트에는 업로드되지 않았지만 그의 가장 유명한 연설이자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연설은 2006년 12월21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회 발언이다. “부끄러운줄 알아야지”라는 일갈 때문에 네티즌들 사이에 여전히 주목도와 화제성을 유지하고 있는 그 연설이다.

수십년째 북한의 십수배 넘는 국방비를 써왔음에도 ‘미군이 없으면 북한과 맞설 자신이 없다’는 이야기를 당당하게 하면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반대한다는 전직 국방부장관들에게 ‘북한에 맞설 전력을 만들 책임은 당신들에게 있던 것 아니냐’ 반문하면서 쏟아낸 일갈이었다.

당시 언론들은 연설의 핵심은 거의 묻어버리고 말꼬투리를 잡거나 연설 중간 미국의 태도를 비유하면서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시늉을 한 그의 모습이 품격 떨어진다며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언론밥을 먹고 사는 한 사람으로서 필자는 이런 언론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생전의 그를 움직인 동력중 큰 덩어리는 부끄러움이었던 같다. 그는 어린시절의 치기와 젊은 날의 혈기, 무지했던 시절의 행동에 대해서도 늘 부끄러워했다.

마지막 순간, 현행법상 다툼의 여지가 있는 아내의 수뢰 혐의와 주변 사람들을 지켜줄 수 있는 힘이 없다는 무력함 속에 몸을 던지게 만든 것도 아마 부끄러움이었을 것이다.

7년 전 그날, 소식을 듣고 동네 PC방에서 1~2시간 만에 담배 반 갑을 태우며 그의 부고 기사를 써서 송고한 다음 울컥 목구멍으로 올라왔던 것도 부끄러움이었다. 역진하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멈추려 온몸을 던져 부숴버리는 그에게 내가 준 것이 ‘표’ 밖에 없다는 게 부끄러웠다.

그날 소식을 전해들은 필자의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일은 자신에게 소유권이 있는 재임기간 기록물 사본 때문에 ‘사초를 훔쳤다’는 시비를 당하고 대통령으로서 국내기업의 외국 일거리 수주 지원활동을 한 것에 대해 기업 대표가 자기 후원자라는 이유로 특혜 시비를 당했던 것이다.

김경탁 편집부장

당시 필자는 나름 시간을 쪼개서 시비에 대한 반박성 기사를 썼지만 기사들은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다. 데스크에서 ‘함량미달’이라는 이유로 반려당했기 때문이다. 송고했던 기사를 다시 읽어봐도 함량이 많이 떨어진 게 사실이었다. 냉정함도 논리도 근거를 대는 노력도 부족했다.

그런 이후에는 하루하루 사는 게 바쁘고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아이템 자체도 ‘시의성’을 놓쳤다는 이유로 반려된 기사의 부족한 함량을 다시 채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 모든 것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그를 바라볼 때마다 느끼던 이 부끄러움을 조금이나마 치유해주고 이 세상을 살아갈 힘을 돌려준 사람은 예상치 못하게도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일갈한 시대의 양심 故김대중 대통령이었다.

그는 “나쁜 정당에 투표하지 말고, 나쁜 신문을 보지 않고, 집회에 나가고,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이라도 할 수 있다. 하려고 하면 너무 많다”고 허들의 높이를 아래로 내려놓았다. 어떤 이에게는 이마저도 너무 높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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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비 2016-06-03 20:08:45
진정성 묻어나는 글, 흐름도 좋고 가슴에 울림이 있네요.

그리운 노짱..첫 국정감사 시작됐던 143회 때.
노동위 출입 하면서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지요.

이상수,이해찬,이인제,그리고 노무현.
사람냄새 물씬 나던 그때가 언제인지...아득하여라.

김경탁 기자님 좋은 글 고맙습니다. 건필 기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