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조선업계 ‘칼바람’은 건설사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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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조선업계 ‘칼바람’은 건설사 얘기다
  • 임진영 기자
  • 승인 2016.05.18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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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부동산부 임진영 기자

[매일일보 임진영 기자] “이번 사태가 벌어진 원인은 최근 조선업계가 겪고 있는 어려움과 본질적으로 비슷합니다”

지난 10일 삼성물산이 카타르에서 14억 달러 규모의 지하철 역사 건설 공사를 진행하던 도중 카타르 현지 발주처로부터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삼성물산은 공시를 통해 “공사 진행 과정에서 발주처가 계약 범위를 벗어난 업무 지시를 함에 따라 분쟁이 발생했다”며 계약 해지 통보서를 받은 이유를 지극히 '간단하게' 설명했다.

기자는 삼성물산이 카타르 현지 발주처인 카타르 철도공사(QRC)로부터 일방적인 계약 해지 통보서를 받은 ‘진짜’ 이유를 알고 싶었다. 기사를 쓰기 전 사건 당사자인 삼성물산 측의 입장도 들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카타르 측의 일방적인 계약 해지 통보 이유에 대해 무척이나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했지만 지극히 말을 아끼면서 조심스러워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공시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번 카타르 계약 해지 통보 건은 삼성물산이 피해자인 구도다. 공시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계약서대로 성실히 공사를 수행했는데도 불구하고 카타르 발주처로부터 일방적인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피해자’로서 적극적으로 자기 입장을 항변해야 하는 삼성물산이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말을 아꼈다. 이유는 간단했다.

향후 카타르에서 추가로 다른 사업을 계속 수주해야 하는 삼성물산 입장에서 카타르 현지 발주처는 ‘갑’이고 삼성물산은 ‘을’이라는 것.

특히 해당 발주처가 ‘카타르 철도공사’인만큼 중동국가 공기업이 발주한 사업에서 생긴 문제를 삼성물산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경우 추후 수주에 여러가지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을의 입장인 삼성물산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계약 해지 통보 이유에 대해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기 곤란한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몇 가지 얘기를 들려줬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번 사태의 원인이 우리나라 조선·해운업계가 처한 어려움과 비슷하다는 얘기였다.

대우조선해양·현대상선·한진해운·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해운사들이 해외 선주들의 일방적인 용선료 인상에 ‘폭탄’을 맞은 것처럼 삼성물산을 비롯한 국내 건설사들도 해외 발주처들의 일방적인 ‘공사비용 인하 요구’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미 조선업계는 해외 선주들의 용선료 인상 요구에 큰 손실을 입은 상태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정부에서도 국내 조선업계를 살리기 위해 발 빠르게 대처에 나섰다는 것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6일 “국내 해운사와 해외 선주들 간의 용선료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한진해운·현대상선 등 해운사들의 법정관리도 불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용선료를 무기로 국내 해운사들의 목줄을 쥐고 있는 해외의 상선 주인들에게 용선료를 깎아서라도 장사를 계속하던지, 아니면 법정관리에 들어간 국내 해운사들로부터 아예 용선료 자체를 못 받던지 ‘양자택일’을 하라며 ‘세게’ 나온 것이다.

해외 선주들이 우리나라 정부의 이런 강한 태도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다만 임 위원장의 이번 행보는 해외 선주들에게 국내 조선업계 불황에 대한 ‘책임’이 있음을 확실하게 경고한 효과가 있다고 평가받는다.

결국 임 위원장의 강경한 행보가 ‘용선료를 인하할 수 없다’는 뻣뻣한 해외 선주들의 기세를 누르고 ‘용선료 인하’를 통해 ‘국내 조선업계 살리기 노력에 해외 선주들도 동참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건설업계도 마찬가지다. 비단 이번 삼성물산의 카타르 건만이 아니다. 특히 최근 이란 시장에서 연이어 들려오는 국내 건설사들의 MOU 체결 소식들이 더욱 그렇다. MOU는 법적 구속력도 없고 얼마든지 ‘없던 일’로 치부할 수 있는 느슨한 거래 관계다.

더군다나 오랜 국제 제재로 인해 사정이 어려운 이란 현지의 현실을 비추어 볼 때 얼마든지 국내 건설사들도 국내 조선업계가 처한 사정과 비슷하게 해외 발주처로 인한 숱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여기서 과연 강호인 국토부 장관은 해외 발주처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건설사들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강 장관에게 이번 조선업계 사태에서 임종룡 위원장이 보여준 ‘강한 조율의 마법’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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