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 영화감독 이창동
상태바
[인물포커스] 영화감독 이창동
  • 김경탁 기자
  • 승인 2010.05.28 17: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에 관한 영화 <시>로 칸의 마음 사로잡다…한국인 최초 칸 각본상

[매일일보=김경탁 기자] 사회 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을 현실적인 영상으로 고스란히 담아내온 이창동 감독의 다섯 번째 작품 <시>가 지난 5월23일 프랑스 칸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린 제63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이창동 감독의 신작 <시>는 청소년 집단 성폭행과 자살, 노인의 성 등의 소재와 방관자 혹은 적극적 은폐를 통한 방조범에 대한 관찰을 통해 죄와 구원, 부끄러움과 순수, 현실과 사회 그리고 미학적 창조의 과정 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문제작’이다.

참여정부 초대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냈던 이창동 감독이 영화 <시>의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집필을 시작한 것은 2008년부터였다. 2009년 8월 촬영을 시작해 그해 12월 촬영을 마친 <시>는 후반작업을 거쳐 지난 5월13일 개봉했다.

이창동의 노무현 송별사? “특정한 죽음 떠올리는 건 관객의 자유”

▲ 칸 각본상을 받고 소감을 말하는 이창동 감독 (사진=뉴시스)
“<시>는 마음에 관한 영화다. <시>가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매체이듯 관객들과 마음으로 만날 수 있는 영화라 믿는다.” -이창동, 5월 26일 기자간담회.

칸 공식상영 이후 외신의 호평을 받으며 황금종려상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시>가 결국 각본상을 수상하며 감독 이창동의 성가를 확인시켜줬다.

이창동 감독은 5월26일 서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시>가 어렵다는 일부 반응에 대해 “익숙한 문법의 영화는 아니지만 정서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영화”라며 “이미 영화를 접한 사람들이 깊숙하게 이해하고 상당한 공감을 해줘 ‘영화 문법이 보편적이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고 답했다.

<시>의 첫 장면은 도도히 흐르는 강물의 이미지다. 그리고 한 소녀의 시체가 떠내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관객들은 그 소녀가 높은 다리 위에서 강물로 몸을 던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지난해 5월 자신의 고향마을 사저 뒤편의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했다. 이창동이 노무현을 보내는 송시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에 대해 이창동 감독은 “특정한 죽음을 떠올리는 건 관객의 자유이기 때문에 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며, “그것을 특정한 사람의 죽음으로 떠올리는 것은 그 시의 의미를 한정할 수 있다. 관객 자신이 아는 사람의 죽음을 떠올리기를 바랐다”고 설명했다.

이 시에 대해 이 감독은 “영화 전체의 구조로 볼 때 주인공인 미자가 죽은 소녀 희진의 마음을 대신해서 쓴 시로, 세상의 아름다움이 어디서 오는지 깨닫는 과정을 표현하기 위해 삽입했다”며, “그 시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는 아름다움은 우리 삶의 고통과 어려움, 더러움까지 껴안아야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므로 관객이 누군가의 죽음을 떠올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시>가 각본상을 받은 5월23일은 노 전 대통령의 1주기이기도 했다. 참여정부 초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냈던 이 감독의 귀국후 첫 공식일정은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있는 노 전 대통령의 묘를 찾는 것이었다.

이창동 감독은 “서거 1주기 당일에는 칸에 있어서 못 갔으니 늦게라도 도리를 하기 위해 봉하마을에 다녀왔다”며 “이 일과 관련해서는 다른 기회 때 이야기 하겠다”고 더 이상의 언급을 하지는 않았다.

▲ 지난 5월26일 귀국 후 첫 일정으로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찾아 참배하는 이창동 감독

‘칸’보다 까다로운 영화진흥위위원회?

“예우차원의 수상”이라는 유인촌, 시나리오 0점 처리한 영진위
팀 버턴 “<시>의 이야기가 감동적이고 굉장히 마음을 움직였다”

칸의 심사위원들을 사로잡은 ‘영화의 힘’에 대해 이창동 감독은 “내가 들은 이야기는 각본상을 줄 만한 영화가 없어서였다”며 웃어넘겼다. 이 감독은 “내 자신도 작년에 심사위원을 맡기는 했지만 나도 동감했다”며 “각본이 좋은 영화는 없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감독은 “팀 버턴 감독의 말을 전하자면, ‘시’의 이야기가 감동적이었고 굉장히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였다는 것이 각본상을 준 이유였다”며 “정서적으로 잘 받아들여진 것 같다”고 만족스러워 했다.

반면 이 감독은 “주변에 아는 사람은 다 아는데 나는 내 작품에 대해 병적으로 소심한 사람이라 허물만 보인다”며 “시간이 지나 관객들의 반응을 들으면 허물이 잊힐 때도 있지만 내 작품에 대한 엄격함이 계속 유지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스스로를 자학하는 스타일이라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이 감독은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자기도취가 에너지가 될 수 있기에 나도 그런 감정을 갖고 싶다”며, “그런 부분에 있어서 나는 에너지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창동 감독의 겸손한 입장과는 별개로 <시>에 대한 정부쪽 인사들의 부정적 평가는 사회적 논란으로 번졌다. 특히 민주당 최문순 의원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가 영화의 발전을 저해하고, 한국영화를 국제적으로 망신시키고 있다며 연일 맹폭하고 있다.

유인촌 문광부 장관은 <시>의 칸 각본상 수상에 대해 “예우차원에서 준 것”이라는 폄하발언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이에 앞서 지난해 영진위의 마스터영화 제작지원사업 시나리오 심사에서는 이 작품이 0점을 받은 사실이 알려졌다.

이와 관련 문화부는 “유인촌 장관이 ‘시’의 각본상 수상은 ‘예우차원’이었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으나 최 의원 측은 “(유인촌 장관을 만난) 총 7명의 기자 중 4명이 ‘예우차원에서 준 것 같다’는 말을 분명히 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반박했다.

또한 영진위는 “영진위 심사위원 중 1명이 ‘시’에 대해 ‘0’점을 준 것은 제출서류 요건 미비 때문으로, 최고·최하점을 제외하고 평가했기 때문에 ‘0’점은 평가 점수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최 의원은 “심사운영 세칙은 ‘고득점순 2작품 선정지원’을 규정하고 있고 ‘시’는 당시 심사에서 2위를 했기 때문에 영진위의 해명이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최 의원은 “영진위에서 제출받은 최종 심사평을 확인한 결과 ‘마스터로 이해될 만한 작품이 없어서 1편만 선정하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며, “결국 영진위 심사위원들은 ‘시’가 마스터 영화라는 위상에 맞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칸 영화제가 인정한 영화를 영진위가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진 셈”이라고 강조했다.

최 의원은 특히 “이 감독은 서류 제출 때 시나리오 형식이 아니어서 이 점을 담당자에게 문의했으나 담당자가 ‘(시나리오 형식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말해 제출했다”고 들었다면서 “이제 와서 서류요건 미비로 0점을 줬다는 영진위의 해명은 옹색하다”고 비판했다.

▲ 이창동 감독과 배우 윤정희

이창동 “윤정희 같은 분이 15년 만에 선택했다는 자체가 큰 인정”
“윤정희 통해 ‘미자라는 인물이 이런 사람이구나’ 느낄 수 있었다”

영진위 심사에서 0점을 받은 일에 대해 이창동 감독은 26일 기자간담회에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면서 “윤정희 선생님 같은 분이 15년 만에 선택한 작품이라는 것 자체가 큰 인정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여주인공 ‘미자’를 연기해 호평받은 윤정희에 대해 “영화를 찍으면서 윤정희라는 배우를 통해 ‘미자라는 인물이 이런 사람이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고 극찬했다.

윤정희는 이번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줄리엣 비노슈(46)와 함께 유력한 후보로 거명됐고, 한 러시아 평론가는 “윤정희가 여우주연상을 타지 못한 것에 대해 화가 난다”고까지 표현하기도 했다.

윤정희의 본명은 극중 이름과 같은 (손)미자이다. 이에 대해 이 감독은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시’라는 영화의 주인공과 플롯을 떠올리면서 거의 동시에 윤 선생님을 생각했다”며 “미자라는 이름이 일치한 것도 우연”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윤정희는 “이창동 감독에게 이런 매력적인 인물을 만들어줬다는 것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며, “특히 나를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썼다는 것에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 <시> 스틸컷. 안방극장의 스타배우 안내상도 <시>에 조연으로 참가했다.

 

 


 

▲ 이창동 감독

 

 영화감독, 소설가, 장관…이창동은 누구인가?

1954년 대구에서 태어나 1980년 경북대 사범대학을 졸업한 이창동은 그해부터 1986년까지 고등학교 국어교수로 재직했다.

고교 선생님이었던 1983년 소설 ‘전리’로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그는 이후 1987년 소설 ‘운명에 관하여’로 이상문학상 추천우수상, 1992년 ‘녹천에는 똥이 많다’로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했다.

영화계 입문은 박광수 감독의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1993)의 시나리오와 조감독을 맡으면서였다. 이후 박 감독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시나리오도 맡았다.

1996년 명계남, 문성근, 여균동 등과 함께 이스트필름을 설립, 1997년에 <초록물고기>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창동이 지금까지 세상에 내놓은 영화는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까지 총 5편으로, 아직 평가가 마무리되지 않은 ‘시’를 제외한 4편의 영화는 모두 그해 국내 영화제를 휩쓸었고, 국제영화제에서도 많은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특히 2002년작 <오아시스>는 3대 메이저영화제의 하나인 제59회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신인배우상(문소리) 외에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 미래의 영화상, 전그리스도교회상 등 5관왕을 기록하면서 놀라움을 안겨주기도 했다.

참여정부 초대 문화관광부 장관(2003.2.27~2004.6.30)을 역임한 이창동은 2009년 11월부터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의 문화예술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지난 4월부터 노무현재단의 라디오광고 성우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