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想] ‘빨간날’은 정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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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想] ‘빨간날’은 정치적이다
  • 김경탁 기자
  • 승인 2016.05.03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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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탁 편집부장

[매일일보] 5월 6일은 대한상공회의소가 제안하고 정부가 결정한 임시공휴일이다. 덕분에 어린이날과 주말을 끼어서 나흘 연휴가 갑자기 생겼다. 직장생활을 하는 근로자로서 고마운 일이다. 오랜만의 긴 휴식에 마음도 들뜬다.

예상치 못했던 ‘빨간 날’이 생겨 오랜만에 탁상 달력에 눈길을 주었다. 유심히 들여다보는데 이상한 점을 느낀다. 5월 18일에 아무 표시가 되어있지 않은 것이다. 2011년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으로 관련 자료를 등재하고 국가에서 기념식을 주최·주관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에 아무런 표시가 없다니….

한 장을 앞으로 넘겨 4월 페이지를 보니 3일, 16일, 19일에도 아무 표시가 없다. 모두 국가적 기념일인데 말이다.

4월 3일은 박근혜정부가 2014년 ‘국가기념일’로 지정한 제주 4·3 희생자 추념일이었고, 16일은 세월호 참사 2주기이자 역시 같은 해 11월 제정된 ‘국민안전의 날’이었으며, 19일은 아시아 최초의 민주주의 관련 시민혁명 4·19혁명 55주년이었다.

이 달력의 4월에 있는 특별한 표시는 20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치러졌던 ‘빨간날’ 13일과 청명(4일), 식목일·한식(5일), 장애인의 날·곡우(20일) 정도이다.

모 금융회사 로고가 박힌 이 달력 제작 업체가 이렇게 즐비한 국가적 기념일들에 아무 표기를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어떤 업종과 비교해도 정부시책 변화에 가장 민감할 ‘금융회사’의 특성이 반영된 것 아닐까하는 심증이 가면서도 굳이 로고의 주인에게 ‘왜 달력을 이렇게 만들었냐’ 묻기에는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대한민국이 침몰했다”면서 사회의 뿌리 깊은 ‘적폐’ 문제가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갖가지 논의를 벌이는 계기였던 세월호 참사 후 만 2년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안 달라진 책임을 애꿎은 일개 금융회사에게 따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뒷장을 넘겨 6월 25일에 ‘6.25 전쟁’이라는 글씨가 적혀있음을 발견하면서 마음은 더 짠해졌다.

‘빨간날’은 정치적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의 당색이자 박근혜 대통령이 공식선거운동기간에 ‘옷이 별로 없다’면서 매일 입고 다닌 옷 색깔이 빨간색이어서가 아니라 온 나라가 어떤 날을 기념하고 어떤 날에 쉴지를 결정하는 것은 ‘민의’의 집합체인 정치영역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광복 70주년을 계기로 내수 진작 및 관광 활성화를 위해 8월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정한 바 있다. 이번에 5월 6일을 임시공휴일로 정한 것과 같은 이유이다.

올해 달력에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4·19 기념식에 참석했다. 박 대통령을 수유동 국립 4·19 민주묘지로 이끈 힘은 4·13총선 민의로 보인다.

다시 시선은 박 대통령의 남은 임기동안 다가올 ‘국가적 기념일’들로 향한다. 오는 18일, 박 대통령이 처음으로 ‘님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를지 그리고 내년에 스스로 국가기념일로 제정해 격상시킨 4·3 국가추념식에 대통령 자격으로 참석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살릴지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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