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주택 공급 과잉’의 늪에 빠진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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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주택 공급 과잉’의 늪에 빠진 정부
  • 임진영 기자
  • 승인 2015.11.26 1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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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설·부동산팀 임진영 기자

[매일일보 임진영 기자] 올 한해 숨가쁘게 달려온 주택 시장이 연말을 맞아 곳곳에서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다. 수 십대 일의 청약 경쟁률을 기록한 분양 단지에서 계약 포기자가 속출해 미분양이 발생하는가 하면 10월 들어선 주택 매매 거래량도 감소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올해 건설사들이 주택 공급량을 지나치게 늘리면서 이 주택들이 완공되는 입주 시기가 다가오는 2~3년 후 미분양이 속출하는 입주 대란이 발생하다는 염려다.

공급 과잉과 입주 대란이 맞물리면 집값 하락과 함께 부동산 시장의 폭락이 이어진다.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여있는 우리나라 가계 세대 특성 상, 집값 폭락은 국가 경제 전반에 깊은 침제를 불러올 위험 요소가 다분하다.

지난 16일 국토부 수장에 새로 취임한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이 25일 주택업계 관계자들과 가진 첫 만남에서 한 말도 “주택 공급 과잉이 염려된다”였다.

주택업계 관계자들은 강 장관의 발언에 펄쩍 뛰었다. 주택 공급 과잉은 잠시간의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며, 시장의 손에 맡기면 자연스레 주택 공급량은 조절될 수 있다는 것이 건설업계 측의 주장이다.

실제로 이들의 호들갑이 ‘업계 밥그릇 지키기’로 비춰질 수는 있을지 모르겠으나 문제의 발단인 ‘주택 공급 과잉’ 여부는 엄밀히 따져보면 지역별로 상황이 달라진다.

수도권 및 지방의 경우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많다고 볼 수 있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인구의 사분의 일이 살고 있는 서울 지역의 경우 여전히 주택 보급률이 낮은 실정이다. 이렇듯 주택 공급 과잉 현상이 발생한 것은 사실이지만 각 지역마다 사정은 판이하게 틀리다.

그런데도 정부가 ‘전국의 주택 공급량이 지나치게 많다’면서 여러 규제를 통해 인위적으로 주택 공급량을 제한한다면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서울에선 ‘내 집 마련’이 더욱 어려워진다.

주택업계 관계자들의 호소가 통했는지 강호인 장관은 업계 관계자들과 첫 만남인 25일 조찬 간담회 종료 후 “주택 공급량이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니다”라며 태도에 변화를 보였다.

중요한 것은 이후 정부의 자세다. 집단 담보 대출 규제 등 돈줄 차단을 통해 인위적인 제한을 가하려고 한 정부보다 이미 건설사들은 한 발 더 앞서나가고 있다.

현대건설, 대우건설, GS건설, 대림산업 등 올 한해 주택 사업으로 재미를 본 대형 건설사들이 일제히 내년도 사업 청사진에서 주택 분양 공급량을 올해 대비 35% 정도 줄이기로 계획 중인 것이다.

이는 적어도 정부보다 앞서 먼저 시장에서 스스로 조율에 나선 셈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은 오히려 주택 시장을 침체시킬 위험 요소가 존재한다.

‘주택 공급 과잉’이라는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큰 칼로 단칼에 자르는 것은 문제의 해결 방법이 될 수 없다. 주택 공급 과잉 문제를 세심하게 풀어나가는 정부의 차분한 조율과 대응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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