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벤처의 꿈, ‘탱자’가 돼 버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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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벤처의 꿈, ‘탱자’가 돼 버렸나
  • 박예슬 기자
  • 승인 2015.09.21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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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부 박예슬 기자

[매일일보 박예슬 기자] 한때 미국 실리콘밸리의 선진적이고 탈권위적인 기업 문화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다.

자유로운 복장과 수평적인 의사소통, 젊은 오너로 상징되는 벤처기업의 이상향은 우리나라의 벤처 붐을 타고 한국에서도 얼마간 현실이 되는 듯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이상향은 빛이 바랬다. 국내 벤처기업들 역시 기존 한국 기업들 특유의 비민주적, 탈법적 문화를 답습하기 시작한 것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처럼, 벤처기업의 자유스러운 문화라는 ‘귤’은 태평양을 건너니 ‘전형적 한국식 기업문화’라는 ‘탱자’가 돼 버린 것이다. 이들 역시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하청업체와 임직원을 착취하고 고객을 속인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벤처기업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인 소셜커머스 업계도 그 폐단을 전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최근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업계 1위 쿠팡의 씁쓸한 모습도 단적인 예다.

소프트뱅크로부터 1조원의 투자를 유치한 후 업계 1위로 승승장구하는 쿠팡이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온라인 업계의 특성상 긴장의 끈을 놓을 순 없을 것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쿠팡이기에 때로는 ‘무리수’조차 놓았던 듯하다.

이 과정에서 ‘갑질’ 등 여러 논란이 불거졌고, 김범석 회장은 올해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소환됐다. 하지만 김 대표는 ‘농구를 하다 다쳤다’는 이유로 끝내 국회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티몬, 위메프 등 경쟁업체 대표들을 비롯해 심지어 5대 재벌의 오너인 신동빈 롯데 회장도 출석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김 회장은 부상으로 국감에는 출석하지 않았지만 회사에는 정상 출근했다고 한다. 고작 15초의 답변을 하기 위해 목발을 짚고 국회를 찾는 것보다는 현업에 충실한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하 직원을 대신 내보낸 국감에서 쿠팡은 ‘짝퉁’ 제품을 무자료 거래했다는 의혹까지 받게 됐다.

사건을 취재하면서도 끊임없이 의심이 들 만큼 사실관계에 대한 양측의 의견은 달랐다. 양측의 증거물 또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만큼, 결론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다.

명실공히 기득권이 되어버린 소셜커머스 업계가 그만큼의 책임감을 통감하고 그에 따른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이번처럼 진땀을 빼야 할 일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한때 그들이 ‘다르고 싶었을’ 대기업들의 현재 모습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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