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회장 후계구도 서두르는 속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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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은 회장 후계구도 서두르는 속내는
  • 권민경 기자
  • 승인 2006.03.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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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녀 정지이 입사 2년 만에 임원 승진
재계 '제2의 경영권 분쟁' 방어 위한 포석?
현대 '경영수업 일환, 후계구도 시기상조'

▲ 정지이 현대U&I 실장
[매일일보= 권민경 기자]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 타계 후 현정은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잡은 지 3년째로 접어들었다.

그동안 현 회장은 KCC와의 경영권 분쟁을 힘겹게 마무리짓고 그룹 계열사들을 본격적인 궤도에 올려놓으며 이제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서는 KCC와의 분쟁을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경영권 분쟁의 핵심이었던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을 여전히 KCC 측에서 20% 넘게 소유하고 있어 현 회장 측이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더욱이 범 현대가 일부에서도 '정'씨가 아닌 '현'씨가 그룹을 이끌고 있는 것을 탐탁치 않아 한다는 얘기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현 회장 역시 이런 시선을 의식한 것일까. 최근 현 회장의 맏딸 정지이(28) 현대상선 과장이 입사 2년 만에 현대 U&I 실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현 회장이 KCC와의 '제2의 경영권 분쟁 가능성'에 대비해 후계구도를 조속히 안착시키려 한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현대 측에서는 "단순한 경영수업의 일환일 뿐 벌써부터 후계구도를 운운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지난해 7월 북한 원산에서 이뤄진 현 회장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 당시 현 회장의 옆을 지키던 사람은 맏딸 정지이 실장이었다.

김 위원장은 정 실장을 첫 대면하는 자리에서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며 각별한 관심을 나타냈다고 한다.

같은 달 있었던 개성 시범 관광 행사에도 정 실장은 현 회장과 함께 개성을 방문하는 등 대북 주요 행사마다 현 회장을 그림자처럼 수행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업무상으로만 보자면 정 실장이 대북 사업에 나설 이유가 없다" 면서 "이는 현 회장이 새로이 맡은 대북 사업의 '정통성'을 확인시키려는 의미가 크다" 고 분석했다.

즉 정 실장은 정주영 그룹 명예회장의 손녀이자 정몽헌 전 회장의 맏딸이기 때문에 현대가의 '정씨' 계보를 잇는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는 얘기.

정 전 회장을 연상케 하는 외모에, 침착하고 책임감 있는 성격, 무엇보다 현대가 '정씨'를 잇는다는 의미 때문일까.

현대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정 실장에 대한 현 회장의 애정은 각별하다고 한다.

대내외 중요자리에는 정 실장을 빼놓지 않고 데리고 다니며 심적으로 의지하는 면이 많다는 것이다.

때문에 현대그룹 안팎에서는 정 실장이 현 회장의 뒤를 이어 현대그룹을 이끌 것이라는 데 큰 이견이 없다.

입사에서 임원 승진까지 2년 만에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와 연세대 신문방송학 석사 과정을 마친 정 실장은 입사 2년만인 지난 3월 인사이동 때 임원급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부친인 고 정몽헌 회장 사후 2004년 1월 현대상선에 경력직 평사원으로 입사한 정 실장은 그 해 말 대리로 승진, 2005년 7월에는 과장으로 올라섰다.

이후 작년 말까지 현대상선 재무팀에서 근무한 뒤 이 달 1일자로 그룹 계열사인 현대U&I 기획실장으로 승진했다.

현대그룹에 따르면 현대U&I와 다른 계열사간 직급 체계가 다르지만 타사와 비교하면 임원급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 관계자는 "지난 해 말 잠시 회사를 떠나 있다가 돌아왔기 때문에, 초고속 승진이라는 얘기는 좀 맞지 않는 것 같다" 면서 "지난해 현대 U&I 설립부터 등기이사로 참여했고, 본인이 IT 쪽에 관심이 많은 터라 이번에 기획실장으로 발령이 난 것이지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정 실장은 현대상선 회계부, 재정부 등 현업 부서를 거쳤고 U&I 의 디지털 컨버전스 사업을 추진하기에 적임자라고 평가됐다" 고 덧붙였다.

현대 U&I 는 그룹의 중장기 발전 전략에 따라 유비쿼터스형 미래 첨단 사업 육성을 위해 2005년 7월 설립된 정보통신기업이다.

최근에는 그룹의 해외 사업망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공공기관 주요 사업 수주, 유비쿼터스 시티 프로젝트 참여 등 급성장을 보이며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재계에서 현대 U&I에 관심을 보이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현 회장이 지분의 60%를 대고 계열사들이 나머지 지분을 출자한 현대U&I는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상선, 현대택배, 현대아산, 현대경제연구원 등 5개 핵심 계열사의 IT 전략을 총괄한다.

즉 전사적자원관리 시스템이 정착되면서 모든 정보가 SI업체 데이터베이스에 들어오기 때문에 현대U&I는 그룹 전반적 상황을 컨트롤하는 안목을 키우기에 유리하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더욱이 현 회장이 각별히 신임하는 전인백 그룹 기획총괄본부 사장이 대표이사를 겸하고 있어 현대U&I가 현 회장의 지배권 강화를 위한 매개체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정 실장이 지난해 현대U&I의 등기이사로 선임됐을 당시에도 경영권 승계를 가속화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번 임원 승진을 바라보는 재계의 시각 역시 현 회장이 정 실장의 후계구도 안착을 서두르고 있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물론 현대그룹 관계자는 "이번 승진 인사는 경영수업의 일환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재계에서 이를 단순히 '수업'의 일환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은 많지 않다.

일각 '제2의 경영권 분쟁 우려, 후계구도 가속화'

사실 재계가 정 실장의 행보에 주목을 하는 이유는 30살도 안 된 정 실장에게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경영승계를 하려는 현 회장의 움직임 때문이다.

물론 현대그룹 외에도 현대의 다른 계열사들을 비롯, 삼성, 신세계 등 많은 그룹들이 후계구도를 서두르는 추세이긴 하지만 정 실장의 경우는 빨라도 너무 빠르다는 것.

이 때문에 재계는 그 배경이 KCC와 '제2의 경영권 분쟁' 가능성을 염두에 둔 사전 포석의 성격이라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

지난 2003년 8월 고 정몽헌 회장의 사망과 함께 KCC와 현대는 치열한 경영권분쟁을 시작했다.

▲ (좌)에서 세번째부터- 현정은 회장/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 정지이 실장
정 전 회장의 작은 아버지이자 현 회장의 시숙부인 정상명 명예회장은 사모펀드 등을 동원해 현대그룹의 지주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을 매입하며 그 해 11월14일 경영권 인수를 공식 선언했다.

이에 현 회장 측에서는 지분방어와 함께 주식대량보고 등에 관한 증권거래법 위반 등의 문제를 제기했고 결국 지난해 2월 증권선물위원회 측이 KCC에 현대엘립이터 지분 처분 명령을 내리며 일단락 된 바 있다.

경영권 분쟁 당시 정 명예회장은 현대가의 며느리인 현 회장이 그룹을 이끄는 것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현 회장의 어머니이자 현대엘리베이터 대주주인 용문학원 이사장 김문희씨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상선의 최대주주이므로 현대엘리베이터를 가져가면 현대상선 뿐 아니라 자회사격인 현대증권, 현대택배, 현대아산까지 손에 넣을 수 있는 사실상 그룹 지주회사이다.

그런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을 김문희씨가 19.4%를 소유해 개인 최대주주에 올라있고 현 회장의 아버지 현영원 전 신한해운 회장, 현 회장의 언니 일선씨와 동생 지선, 승혜씨 등이 골고루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범 현대가 일부에서도 정씨가 아닌 현씨 일가와 김문희씨가 현대그룹을 장악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재계 관계자에 따르면 특히 정 명예회장은 현 회장과 김문희씨가 그룹을 이끌게 할 수 없다는 속내가 강했다고 한다.

결국 KCC와 현대그룹은 이후 격렬한 싸움을 거듭했고, 전쟁은 현 회장 측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아직도 KCC와 현대 측의 경영권 분쟁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현재 현대엘리베이터 지분구조는 김문희씨가 19.4%, 현 회장 및 그 특수관계인이 5.5%, 그리고 KCC 및 특수관계인이 23.0%를 보유하고 있다.

김문희씨와 현 회장 측 지분의 합이 25%를 넘어 현 회장 측에서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지만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일단 현 회장의 개인 지분이 취약하고 김문희씨의 상황 변화에 따라 지분변동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KCC 측 지분은 여전히 20%를 넘어 경영권 위협하는 정도이므로 '제2의 경영권 분쟁'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한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이런 조건들이 바로 현 회장에게 있어 경영권 승계를 앞당기도록 만드는 이유"라며 "경영권 분쟁의 불씨, 범 현대가의 곱지 않은 시선 등을 잠재우는 방법은 결국 '정씨' 핏줄인 지이씨를 그룹 후계구도의 중심에 세우는 일이지 않겠느냐" 고 말했다.

kyoung@sisa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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