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정영 칼럼>친일파 청산 없이는 대한민국 역사는 단 한걸음도 진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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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영 칼럼>친일파 청산 없이는 대한민국 역사는 단 한걸음도 진보할 수 없다
  • 나정영 발행인 겸 사장
  • 승인 2010.03.26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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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다음엔 가톨릭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이었으므로 침묵했다.

그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치 정권에 저항했던 마틴 뇌묄러 목사가 ‘회색인’을 경계한 유명한 명언이다.

최근 일본 보수 우익들이 “대한민국이 일본 덕분에 개화 됐다” “조선인들이 한일합방을 원했다, 아니면 러시아의 식민지가 됐을 것이다” 는 말들을 심심치 않게 하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일본의 역사학자가 을사조약이 당시 고종황제의 주도하에 진행됐다는 주장까지 펴고 있다.
하라다 다마키(原田環) 현립 히로시마대 교수는 "고종황제는 국민과 일체가 돼 을사조약에 반대했다고 평가돼왔으나 사실과 다르다.

 고종 황제는 한국 황실의 이익 보증을 일본에 요구하며 조약을 교섭했다“ 강변했다. 특히 다마키 교수는 “당시 어전회의에서 대신들은 조약체결의 거부를 주장했으나 고종황제의 ‘교섭타협’ 노선에 따라 협약안을 수정시켰고 그에 따라 2차 한일협약이 체결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한민국 다수의 역사학자들은 중대한 도발적인 발언임에도 불구하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들은 이전에 ‘친일민족사전’이 나왔을 때도 어정쩡한 태도를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전력이 있다.

“일제 식민지였을 때 과연 먹고살기 위해 친일을 하지 않은 사람이 몇 명이 되느냐. 생계형 친일은 이해해야한다”는 논리였다.

이 논리대로 한다면 먹고살기 위해서 일본 천왕이 주는 작위를 받아 하인을 몇 백 명씩 두면서 ‘호위호식’하던 친일파 이완용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는가? 이들도 먹고살기 위한 문제 때문에 친일을 했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문이다.

그렇다면 당시에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백 번을 양보해도 말이 되지 않는 논리다.

중국, 프랑스, 북한 등의 국가들은 반민족 행위를 한 인물들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도 광복 60년이 넘었지만 친일파 청산문제로 시끄럽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친일파 청산 없이는 대한민국 역사는 단 한걸음도 진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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