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의 한반도, 남겨진 '재반전'의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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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의 한반도, 남겨진 '재반전'의 불씨
  • 김경탁 기자
  • 승인 2015.08.25 1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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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운 촉발한 DMZ 지뢰 도발, 남북대화 재개로 ‘전화위복’ 역할
‘유감’은 진정 ‘사과’인가? 합의문 놓고 앞으로 ‘해석 갈등’ 여지

[매일일보 김경탁 기자] 지난 4일 비무장지대(DMZ) 지뢰 도발 사태를 계기로 전운이 감돌았던 한반도가 남북한 당국간 마라톤 회담을 통해 돌연 화해·협력 분위기를 띄기 시작했지만 청와대가 장밋빛 기대를 밝히고 있는 남북관계의 변화와 발전에는 여전히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

 

최근 남북은 1974년의 7·4남북공동성명 발표 이후 사상최악이라 할 정도로 냉랭한 분위기를 이어왔다.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공동 행사가 정부차원은 물론 민간 수준에서조차 단 한 건이 성사되지 않을 정도였다.

남북 화해의 옥동자인 개성공단을 제외하면 남북이 서로 말조차 섞지 않을 정도로 데면데면한 분위기 속에서 발생한 지뢰 도발은 과거 남북간 교류가 활발했던 시기에 발생했던 여러 악재들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충격파를 낳았다.

특히 지뢰도발은 그 방식의 비열함으로 인해 그간 사사건건 모든 현안에 대해 멱살잡이를 하던 여야 정치권이 모두 ‘단호한 대응’을 주문할 정도로 남한 사회 전체에 큰 공분을 자아냈다.

이후 남측은 2004년 중단됐던 DMZ 대북 확성기방송을 재개했고, 방송재개 10일 뒤인 20일 북한의 확성기 설비를 향해 고사포 및 평사포 위협사격을 하면서 휴전 상태였던 남북이 다시 전쟁을 재개하는 것 아니냐는 국제사회의 우려를 자아내기도 했다.

위협사격 이틀 뒤였던 22일 판문점에서 남북 고위급 회담이 시작됐고, 기나긴 대화 끝에 남북은 이산가족 상봉행사와 민간교류 활성화 등을 비롯한 6개 조항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휴전선을 지키던 두 국군장병의 애꿎은 희생이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를 다시 움직이게 만든 셈이다.

 

하지만 이번 남북간 합의문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장애인에게 너무도 가혹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할 두 젊은이에 대해 남북한 양측 정부가 ‘예의’를 지켰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향후 남북 대화·협력에 대한 계획을 많이 담고 있는 이번 합의문의 핵심은 두 번째 조항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지역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였다”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합의문 발표 브리핑에서 “이번 회담에서 북한이 지뢰도발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방지와 긴장 완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유감’이 ‘사과’인지에 대해서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비롯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특히 회담 기간 박근혜 대통령이 “분명한 사과와 재발방지를 받아내야 한다”고 강경한 입장을 밝혔던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합의문에 지뢰 도발의 책임소재에 대한 인정과 사과도, 재발방지에 대한 약속도 찾을 수 없는 ‘유감’이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이 사용된 것은 그저 위기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우리측이 무리한 합의를 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남게 한다.

 

더욱이 이 문구는 이명박정부 시절 청와대 비선라인이 북한에 정상회담을 제안하면서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에 대해 ‘제발 북측에서 볼 때는 사과가 아니고, 남측에서 볼 때는 사과처럼 보이는 절충안이라도 만들어 세상에 내놓자’고 요구했다”던 북한의 폭로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더 고약하다.

물론 아무리 미심쩍고 찜찜한 부분이 남아있다 하더라도 대결보다는 대화가, 전쟁보다는 평화가 훨씬 좋은 일이다. 

또한 한반도에서 전쟁이라는 불행을 다시 겪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에 여러 의문점을 뒤로 한 채로도 남북간 대화는 당분간 발 빠르게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0’에 가까워져가던 남북간 대화·협력이 다시 활발해지고 보다 많은 교류를 해갈수록 지난번 천안함 폭침이나 이번 DMZ지뢰 도발에 대한 책임과 사과의 진실을 문제 삼는 목소리는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는 언젠가 반드시 역사의 발목을 잡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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