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항공업계, 떠나는 조종사 잡지 못한다
상태바
[기자수첩] 항공업계, 떠나는 조종사 잡지 못한다
  • 정두리 기자
  • 승인 2015.08.09 10:52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산업부 정두리 기자

[매일일보 정두리 기자] 몇 십년동안 국적기를 책임졌던 한국 조종사들이 짐을 싸고 있다. 그들의 시선은 중국으로 향한다.

중국 국적 항공사들이 파격적인 조건으로 이직 유혹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뿌리치기 힘든 조건은 높은 연봉이다.

대한항공 경력 15년 기장의 연봉은 1억2000여만원이고 여기에 연장·야간·휴일 수당 등을 추가하고 세금을 떼면 평균 1억5000만원 안팎의 수준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최대 항공사의 최대 수준이지만 옆나라 중국 항공사는 이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중국 항공사들은 기종에 따라 연봉 2∼3억원 이상을 부른다. 베이징 캐피털 에어라인은 한국 조종사에게 세후 연봉 3억4000만원(29만달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봉만 따질 경우 한국에서 일하는 것보다 못해도 2배는 더 버는 셈이니 그야말로 달콤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근무환경은 더 낫다고 하니 솔깃하다. 중국 항공사의 탈권위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와 조종사들의 낮은 업무강도, 사고도 적은 점은 분명 메리트라고 입을 모은다.

이를 뒤집으면 국내 항공사의 근무환경이 그만큼 후진적이라는 소리다.

물질적인 혜택도 적은데 일하기도 상대적으로 벅차다고 느낀다면 소속감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풍요로운 자신의 삶을 위해 결국 한국과 한국기업을 떠난다고 하더라도 손가락질 하기 힘들 것이다. 작은 차이가 만들어낸 큰 차이다.

국내 항공업계는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진 억압직종이라는 이야기도 여전하다.

최근 퇴사를 앞둔 대한항공 부기장은 조양호 회장의 소통 부재를 비판하는 글을 사내 게시판에 올려 파장을 일으켰다. 이에 조 회장은 “합리적인 제안은 회사 경영에 반영해 사내 문화를 개선하겠다”고 밝히며 소동은 일단락됐지만, 대한항공의 기업문화는 여전히 권위적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앞서 아시아나항공은 수염을 기른 기장에게 비행정지 처분을 내리며 지나치게 경직된 조직문화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이 내국인 기장은 수염을 기른 외국인 기장들과 달리 처벌을 받아 논란은 가중됐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내규에 맞게 처리한 사안이라고 해명했지만, 상명하복식 의사결정 체계와 유연하지 못한 기업문화, 차별적 행태 등의 민낯은 그대로 드러나게 됐다.

항공업계에 종사하는 지인들이 있다면 이와 비슷한 사례는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러한 불만은 곧 듣는 이를 피곤하게 할 정도의 성토로 이어진다. 아마도 내부에서 소리를 높여봤자 쉽게 묵살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대한항공에서는 올해 들어 50여명이 사표를 냈다. 사표를 낸 기장 대부분은 중국으로 이직했거나 절차를 밟고 있는 상황이다.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사이에서도 알게 모르게 중국으로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

짐을 싸는 조종사에게 누가 손가락질을 할 것인가.

떠나가는 자기 식구를 잡지 못하는 항공사가 과연 글로벌 명품 항공사라고 자임할 수 있을까. 반대로 이들이 우물안 개구리 신세로 전락하는 것만 같아 씁쓸할 따름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나도한마디 2015-08-11 12:03:34
애사심과 애국심만을 강요할게 아니라 그에 맞는 처신을 항공사에서 보여주어야 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