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업의 수상한 ‘두 언론 전략’
상태바
[기자수첩] 기업의 수상한 ‘두 언론 전략’
  • 박예슬 기자
  • 승인 2015.07.22 13: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산업부 박예슬 기자

[매일일보 박예슬 기자]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수상은 ‘두 국민 전략(Two nations strategy)’이라는 용어를 남겼다. 당시 영국 사회를 부자와 빈자, 백인과 유색인 등 ‘두 국민’으로 나눠 취급하는 정치 전략을 말한다.

정권에 협조적인 국민에게는 ‘당근’을, 반대하거나 거슬리는 국민에게는 ‘채찍’을 가하는 것이다.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세력을 ‘타자화’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정권에 대한 비판을 원천 봉쇄하는 전략으로 널리 활용됐다.

그런데 정치판에서나 쓰이던 이 전략이, 최근 우리나라 기업과 언론 사이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지고 있다. 말하자면 기업판 ‘두 언론 전략’이다.

최근 기업 홍보인들을 중심으로 이뤄진 광고주협회는 소위 ‘나쁜 언론 리스트’를 작성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리스트의 순위는 공식 발표되진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일명 ‘찌라시’를 통해 알음알음 순식간에 전파됐다.

물론 ‘유사언론 행위’ 자체가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다. 일부 매체들이 비판을 가장하며 악의적 기사를 내고 기업에 금품이나 특혜 등을 요구하는 관행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대외적 이미지 앞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기업 입장에서는 여간 골칫거리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기업에 대한 ‘모든 종류의 비판’을 그저 금품을 바라는 ‘유사언론 행위’로 상정하고, 심지어 여기에 ‘나쁜 언론’이라는 주홍글씨까지 새기는 것은 지나치게 자의적일 뿐더러 객관적 기준을 확인하기도 어렵다.

또 명백히 기업의 과실로 발생한 부정적 이슈에 대해, 떳떳이 책임을 지기보다는 일단 기사화를 막기 위해 ‘거래’도 서슴지 않는 일부 기업들의 관행 또한 유사언론 행위를 키워 온 주요 원인일 것이다.

미심쩍은 건 이뿐이 아니다. 나쁜 언론 대다수는 우연찮게도 소위 ‘메이저 매체’가 아닌 중소 매체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업의 편견과 ‘눈치보기’도 적잖이 작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소위 ‘광고 협찬’이 매체 규모를 따지지 않고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 점을 보면 더욱 그렇다.

실제로 광고주협회는 지난 2011년에도 이같은 ‘블랙리스트’를 선정했으나, 모 유력 매체의 자매지가 1위로 선정되는 바람에 발표조차 하지 못하고 부랴부랴 정정보도를 내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이쯤되면 주류 매체의 비판은 ‘비판’이고, 비주류 매체의 비판은 팩트와 내용과 관계없이 ‘돈을 바라고 하는 유사언론 행위’로 폄훼해 치부해버리는 게 아닌가하는 의문이 든다.

지난 4월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는 우리나라의 언론자유 수준을 ‘부분적 언론자유국’에 해당하는 67위로 평가했다. 헌법에도 명시돼 있는 언론의 자유가 ‘부분적’으로밖에 지켜지지 못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에 대해 언론 시장을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국민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