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홈쇼핑-택배사 ‘불공정’에 ‘새우 허리’만 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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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홈쇼핑-택배사 ‘불공정’에 ‘새우 허리’만 휘어진다
  • 박예슬 기자
  • 승인 2015.07.14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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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송 지연시 택배기사 월급에서 일방적 공제...계약서조차 없는 곳도 있어
▲ <매일일보>가 입수한 한 택배사와 택배기사 간의 계약서. 해당 계약서는 지난 2013년 10월에 체결된 것으로, 택배기사의 업무상 과실에 대해 금전적 패널티를 명시하고 있다. 사진=익명을 요청한 현직 택배기사 제공.

[매일일보 박예슬 기자] 홈쇼핑업체와 택배회사 간 ‘불공정 관행’ 개선이 <매일일보> 취재 결과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홈쇼핑업체는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택배사와 불공정 계약을 체결해왔으며, 택배사는 또다시 불공정 계약을 맺고 택배 기사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는 등의 부당한 관행이 만연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의 울산 대리점에서 근무하는 택배기사 A씨는 지난 2013년부터 이곳에서 근로계약을 맺고 일해 왔지만, 근로조건을 적은 계약서조차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업체 측에 계약서를 요구했지만 2년이 지나는 동안 업체는 계약서를 만들지 않고 있다.

계약서가 있는 곳도 ‘불공정’하기는 마찬가지다. <매일일보>가 입수한 CJ대한통운 타 지역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가 회사와 체결한 계약서를 보면, A홈쇼핑의 물품 배송 중 배송이 2일 이상 지연되거나, 반품된 물건을 5일 이상 수거해오지 못했을 경우 택배기사에 금전적 책임을 묻는다는 조항이 나와 있다.

해당 계약서는 지난 2013년 10월에 택배기사-택배사 간에 체결된 계약서로서, A홈쇼핑 물량에 대한 집배송 업무를 수행할 때의 ‘패널티(배송상의 과실에 대해 택배기사에게 금전적으로 책임을 묻는 것. 일반적으로 급여에서 공제한다)’ 기준을 명시하고 있다. 계약기간은 2년으로 오는 10월까지 유효하다.

계약서에 따르면 출고확정 누락, 출고 오류 등이 발생하면 일정한 금액을 패널티로 부과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 각 내역에 따른 패널티는 합산해 계산되며, 콜처리 평균 비용, 고객 보상 실 발생비용, 재포장비 등 협력사의 추가 비용도 실 발생비용을 기준해 ‘갑(택배사)’의 고객사가 결정하는 비용으로 한다고 덧붙여 있다.

구체적 비율을 보면, 택배기사는 배송이 2일 이상 늦을 경우 3일째부터는 해당 상품 가격의 40%, 4일째는 45%, 5일부터는 50%를 택배기사의 급여에서 공제한다.

또 반품 물건을 늦게 회수했을 경우 5일부터는 운반비의 50%를 공제하며 1일당 10%씩 공제 비율이 높아진다. 8일째부터는 상품가의 8%만큼 추가로 공제하며 10일이 늦으면 운반비 전액과 상품가의 10%를 추가로 공제한다.

이밖에 전산 허위 등록시 5만원, 고객에게 불친절할 경우 3만원, 3일 이상 장기 집화가 지연돼 고객 클레임(항의)이 접수될 경우 건당 1만원을 공제한다는 조항이 게재돼 있다.

택배업계에서 ‘패널티’, ‘원물대(반품된 물건을 늦게 가져올 때 택배기사의 월급 등에서 물건 금액만큼을 공제하는 것)’라고 불리는 조항들에 대해 택배기사들은 대표적인 ‘불공정 조항’이라고 말한다.

복수의 택배기사들에 따르면 이러한 조항은 A홈쇼핑만이 아닌 대부분의 업계에서 계약서에 명시하거나 실시하고 있다.

반품할 물건이 장기적으로 회수되지 않거나 아예 분실될 경우 상황은 더욱 택배기사들에게 불리해진다.

대부분의 홈쇼핑업체와 택배사들이 물품 분실 사유가 택배기사의 과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소명’기한을 길게는 1개월 정도로 두고 있다.

그런데 이 소명기간이 끝난 뒤에도 2개월이 지난 뒤에야 실제 ‘공제’처리가 이뤄져, 택배기사의 입장에서는 공제사유가 발생한 지 석 달여가 지난 뒤에 난데없이 깎인 급여를 받게 된다.

홈쇼핑업계 관계자는 “택배기사 입장에서는 석 달이 지나서야 공제가 되니 이미 다 지난 일로 패널티를 물게 되는 셈이라 반감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지연이 장기화될 경우 제대로 소명기간을 갖지 않고 일방적으로 ‘분실’ 처리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분실처리가 되면 택배기사는 물품의 가격 전액만큼을 급여에서 공제 당하게 된다.

실제로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H홈쇼핑은 기한 내에 돌려받지 못한 물품 전체를 일방적으로 분실 처리해 택배기사들의 원성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택배사 측의 입장은 다르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2013년 당시에는 그러한 조항이 있었으나 택배기사들의 반대로 현재는 사문화된 조항이고, 현 계약서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현재는 택배기사들에 대해 금액적인 ‘패널티’를 실시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회사 측에서는 택배기사들의 입장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반품할 물건이 분실됐을 때 종전에는 소명기간 1개월과 조치기간 2개월을 거쳐 석 달 뒤에 조치가 이뤄지는데 이 기간이 지나치게 길다는 의견이 있어 올 3월부터는 소명기간을 1주일 정도로 줄였고, 소명 절차도 기존 월 2회에서 6회로 늘렸다”고 설명했다.

A홈쇼핑 관계자도 “물품 분실에 대한 책임을 택배기사에게 전가하는 일은 없다”며 “만약 물건이 제대로 회수되지 못한다면 판매 업체에 책임을 묻고, 배송중의 사고는 택배사와 기사 간에 알아서 해결할 것”이라고 일축했다.

물품 배송·환불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고의 책임을 택배기사에게 전가하는 이 같은 관행은 수년 째 논란이 돼 왔지만, 고객의 요구를 만족시켜야 하는 홈쇼핑업체와 택배업체, 그리고 택배기사라는 이중 계약관계 속에서 쉽게 개선이 되지 못하고 있다.

통합물류협회 관계자는 “패널티, 원물대 등의 제도가 업체마다 약간씩 다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택배기사 입장에서는 부당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물품이 제대로 배송되지 않으면 고객이나 홈쇼핑업체 입장에서는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패널티 등이 필요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현행법상 명확한 규제가 없는 것도 택배기사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원인이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간사는 “택배사의 배송·반품에 대해 택배기사들에게 패널티를 부과하는 조항에 대해서 현행 공정거래법상 명확히 규제가 돼 있는 부분은 없다”며 “관련 규제가 없는 것을 악용한 관행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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