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에 귀천? ‘노동’에 대한 천박한 시선을 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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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에 귀천? ‘노동’에 대한 천박한 시선을 넘어라!
  • 김경탁 기자
  • 승인 2015.06.28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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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9주년 기획 | 위기 속 경쟁력 5대 제언 ⑤] 교육, 근본부터 확 바꿔야

[매일일보] 한국의 노사관계 국제경쟁력은 경제수준에 비해 심각할 정도로 낮다. 스위스 국가경영개발원(IMD)의 세계경쟁력 평가 결과를 보면 한국은 노사관계에서 지난해 57위로 전년(56위)대비 한 단계 하락했다. 이는 61위를 기록한 2006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한국의 노사관계 경쟁력이 경제수준에 비해 취약한 이유는 무엇일까? 

1989년 19.8%로 정점을 찍었던 노조 조직률이 꾸준히 하락해 2010년 9.8%로 저점을 찍은 이후 10% 내외를 오가고 있는 것을 보면 ‘노조가 너무 강해서’라는 일각의 주장은 설득력이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 지난 6월 22일 오전 서울 정동 민주노총에서 열린 '민주노총 7·15 총파업 돌입선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학교에서부터 “노동은 천하고 노동운동은 이기적” 인식 주입
한국형 ‘듀알레 시스템’ 정책…근본 외면하고 껍데기만 흉내

한국의 노동운동이 ‘건강’하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는 재계 뿐 아니라 시민사회진영에서도 일부 인정하는 부분이 있다. 대규모 사업장 중심의 기성 노조들이 더 나은 기업과 사회를 향해 대의를 모으기보다 나와 내 가정의 ‘주머니’를 채우는 데 급급해보인다는 것이다.

▲ 자료=취업포털 파인드잡 제공

이는 현행 노동관계법이 ‘쟁의대상’을 그쪽으로만 한정짓고 그 외의 사안을 주장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배경이 가장 큰 이유이기는 하지만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로 ‘노동’ 또는 ‘노동운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매우 부정적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쉽게 말해, 노동을 ‘천한 것’으로 보고 노동운동을 ‘이기적인 것’으로 보는 이 사회에서 아이들이 커서 선뜻 노동자가 되려 하고, 노동자들이 자연스럽게 ‘이기심’을 버리기를 기대하는 것은 ‘넌센스’라는 이야기이다.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은 2011년 ‘계간 우리교육’ 기고에서 “스무살이 넘도록 한국의 대학생들이 자기 부모의 노동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은 결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며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초, 중,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거의 가르쳐 주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일갈한 바 있다.

이 기고에서는 호주에서 노동자로서 자부심이 굉장히 강한 ‘새 아빠’와 살다가 한국으로 공부하러 돌아온 어느 학생이 친아빠에게서 ‘너 공부 열심히 안 하면 나중에 노동자 된다’는 말을 듣고 가치관의 혼란을 겪었다는 대목이 특히 눈길을 끈다.

이와 관련 지난해 취업포탈 파인드잡(알바천국)이 발표한 직장인 대상 ‘이상적 교육관’ 설문조사 결과를 봐도 전문직종사자의 40.9%가 “내 아이가 나와 같은 일 하길 원한다”고 답한 반면 생산기능직 종사자의 경우 46.5%가 “내 자식은 나와 같은 직업이 아니길 바란다”고 답했다.

이보다 앞서 취업포탈 사람인의 2010년 설문조사에서는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응답이 63.2%에 달했고, ‘귀천이 있다’는 응답자의 60.9%가 자신의 현재 직업을 ‘빈천한 편’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해 대한민국 사회가 ‘노동’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보여준다.

 

실제 한겨레신문이 ‘2009 교육과정’의 사회과 교과서 17종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노동 관련 내용은 전체의 2%에 불과할 뿐더러 그 내용조차 선언적·개념적인 수준이거나 노동3권과 노동운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주입하는 것이 적지 않게 담겨있다.

박근혜정부는 출범 직후 독일의 듀알레 시스템(Duales system, 이원화 직업교육)을 한국식으로 변형 적용한 ‘일·학습병행제’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일하면서 이론과 실제 교육을 함께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지만 이는 듀알레 시스템의 껍데기만 흉내낸 것에 불과하다.

물론 최근 몇 년 사이 잇따랐던 현장실습 실업계 고등학생의 산재 사고에 대한 사회적 비난 때문인지 일·학습 병행제로 고용된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와 최대 노동시간 제한, 최종 평가 합격시 고용보장 등을 규정한 것은 진일보한 내용이기는 하다.

 

하지만 중등교육을 마친 후 직업전선에 나선 이들이 나중에 ‘마이스터’가 되면 박사학위를 딴 고학력자보다 더 나은 대우와 존경을 받게 되는 독일의 노동시장구조는 외면하고 단순히 ‘일하면서 공부하는’ 부분만 따온 것은 이 정책이 갖는 한계를 분명히 보여준다.

심각한 청년실업과 노동인력부족이 동시에 존재하는 현재의 대한민국 상황은 분명히 너무도 모순되어 보인다. 이 때문에 취업시장을 외면한 청년층에게 ‘눈높이를 낮춰라’는 충고를 쉽게 하는 기성세대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른바 ‘사회 지도층’이 노동에 대해 존경과 충분한 대우는 하지 않으면서, 학습경쟁에 도태·낙오된 아이들을 사회의 하층민 노동자로 저렴하게 써먹겠다는 밑바탕의 인식을 바꾸지 않는 한 청년층의 노동시장 외면이라는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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