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정영 칼럼> 백인 우월주의가 대한민국에서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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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영 칼럼> 백인 우월주의가 대한민국에서도 존재한다
  • 나정영 발행인
  • 승인 2010.03.11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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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오랜만에 친한 여자 후배에게서 결혼 청첩장이 도착했다.
흔히들 말하는 ‘나 이대 나온 여자’ 에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30대 초반의 전문직 커리어우먼으로 얼굴도 미모는 아니지만 남들에 비해 떨어지는 편도 아니다.

때문에 항상 볼 때마다 “너는 도대체 얼마나 좋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려고 그렇게 조건을 재는 거냐”고 면박을 많이 주었다. 이런 후배의 청첩장이라 더욱 반가웠다. 그런데 청첩장을 뜯어서 보니 신랑 될 사람의 이름이 특이했다.

‘압둘라’
순간적으로 동남아시아 쪽 외국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궁금한 것은 못 참는 성격이라 바로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신랑 될 사람이 동남아시아 쪽 외국인이야”

후배는 이런 전화를 수없이 받았다면서 “신랑이 파키스탄출신의 이주노동자”라면서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나요”라고 오히려 반문했다. 그 소리를 들으니 왠지 밸이 뒤틀려서 “‘이대 나온 여자’와 ‘파키스탄 이주노동자’는 잘 맞지 않는다”고 빈정거렸다.

그때 후배가 했던 말은 나에게 오랜 여운을 남겼다. “선배, 내가 백인남성의 이주노동자와 결혼한다고 해도 그런 소리 했을까요?”라고 반문한 것이다. 갑자기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머리가 멍해졌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 이중적이었다.

동남아계 남성과 영어권의 백인 남성 사이에 존재하는 우리의 차별적 시선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서양에서 흔히 발견되는 백인 우월주의가 우리도 모르게 어느 정도는 내면화된 결과일 것이다.

대한민국 이주노동자 신분으로 우리들과 한솥밥을 먹고 있는 외국인들이 무려 60만 명에 달한다. 이들 대부분이 아시아계 노동자다. 힘들고 고된 ‘3D’ 업종을 도맡아 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계 이주노동자들은 ‘가난한 나라’ 출신이 ‘돈’을 벌기 위해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 사회에서 어딜 가나 ‘찬밥 신세’다.

특히 19만여 명에 달하는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그리고 으레 따르는 임금 체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출입국 직원들의 단속이 있을 때마다 도망자가 되어야 하고, 그 와중에 월급을 떼이거나 크고 작은 부상을 입는다.

반대로 대한민국에 돈벌이를 염두에 두고 들어와 있는 주한미군들에 대해서는 이들이 온갖 범법 행위를 해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가난해서 힘없는 나라’ 출신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위압적이며 권위적인 처세는 더 이상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이다.
끝으로 지면을 빌려 ‘압둘라’와 결혼하는 후배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매일일보 발행인 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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