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절벽-6] 귀족노조, 고용시장 가로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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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절벽-6] 귀족노조, 고용시장 가로막다
  • 박예슬 기자
  • 승인 2015.06.24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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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정규직 위주 노조협상...고용확대·기업 사회적 책임보다 고용세습에 더 적극적
‘위법적’ 퇴직자 자녀 채용특혜 요구...고용 확대할 ‘임금피크제’ 도입도 반대
▲ 대한민국청년대학생연합 회원이 서울 중구 정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본사 앞에서 1인시위를 하는 모습. 청년대학생연합은 지난 2월부터 매달 민주노총 앞에서 노동계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대한민국청년대학생연합 제공

[매일일보 박예슬 기자] #. A기업은 노조와의 단체협약 규정 중 신규 직원 채용 시 정년퇴직자, 해고자 등의 피부양자 가족을 우선 채용토록 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퇴직자의 자녀는 면접 시 5%의 가산점을 부여받는다.

#. B기업도 노사 단체협약에서 사원 채용 시 지원자 중 순직자, 재직자, 퇴직자의 직계가족이 있을 경우 전형 결과가 다른 지원자와 동일할 경우, 직계가족을 우선 채용하도록 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2015년 현재 대한민국 청년의 실질실업률은 30.9%를 기록하고 있다. 사실상 청년 3명 중 1명은 ‘백수’인 셈이다. 여기에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등으로 최소 생계만을 유지하며 ‘취업 준비중’인 불완전 취업자를 포함하면 거의 절반에 가까운 실업률로 추정된다.

그야말로 ‘고용절벽’이 갈수록 가팔라지는 가운데, 이 같은 현실을 외면하는 ‘대기업 정규직’ 위주의 노동계가 기업의 고용 확대를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013년 C자동차 광주공장에서는 하청업체 노동조합원 김모(37) 씨가 분신을 시도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김 씨는 사측에 직원 채용 시 비정규직 노동자를 우선 채용할 것을 요구해왔으나, 사측이 받아들이지 않자 이에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의식한 듯 그해 정규직 노조는 ‘하청직원의 정규직화’를 사측과의 협상 테이블에 들고 나왔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반영되지 않았다. 대신 정규직 노조는 ‘신규 채용 시 25년 장기근속자와 정년퇴직자의 직계 자녀 우선채용’ 요구했고, 통과시켰다.

지난 3월 고용노동부가 한국노동연구원에 의뢰해 연구, 발표한 2014년도 ‘단체협약 실태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노사간 단체협약 조항 중 정년퇴직자, 업무상 재해자 등의 배우자, 직계자녀에 대한 우선채용이나 특별채용 규정을 두고 있는 기업이 조사대상 기업 중 221곳(30.4%)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채용 항목을 둔 기업에서는 △업무상 질병이나 사고로 퇴직한 자(156곳) △업무상 질병, 사고 사망자(71곳) △정리해고자(23곳) 등 일정 피해를 입은 근로자의 가족에 대한 채용 우선권을 부여토록 했다.

그러나 피해보상적 성격이 아닌 단순 우선채용 항목을 둔 곳도 적지 않았다. △정년퇴직자 가족(133곳) △업무 외 질병, 사고 사망자 가족(22곳) △노동조합원 또는 장기근속자 가족(13곳)에게 채용 우선권을 주는 기업체들도 있었다.

이 같은 ‘고용세습’ 조항은 법원에서 무효 판결을 받은 사례도 있다.

지난 2013년 울산지방법원은 D자동차에서 근무하다 퇴직 후 2011년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황모 씨의 유족이 자녀의 특별채용을 요구하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 ‘패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법원은 “산재로 사망한 근로자의 유족에 대해 산재보상법·민법상 손해배상과 별도로 누군가가 가질 수 있었던 평생의 안정된 노동의 기회를 그들만의 합의로 분배하는 일은 현재 우리 사회가 동의할 수 있는 질서에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며 “민법 제103조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약정으로 무효”라고 판결했다.

김성재 고용노동부 사무관은 “기업에서 실시하고 있는 장기근속자 자녀 우선채용 제도는 위법”이라며 “업무상 재해를 입은 근로자 자녀에 대한 우선채용은 ‘위법’이라고 규정하기 어려워서 일단 두고 있으나, 정년퇴직자 등에 대한 직계가족 우선채용 등에 대해서는 향후 두달간 자율 개선 권고 후, 시정되지 않으면 노동위원회의 의결을 거쳐서 시정명령을 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노조의 특혜 문제에 대해서는 현재 노동시장의 구조 전반을 개선해야 하는 문제와도 관련이 있어서 당장 개혁 정책을 실시하기는 어렵고, 지난 2008년부터 단협 시정명령을 매년 내리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신규 채용 시 노조에 통보 및 협의를 거쳐야 하는 기업들도 상당수 있었다.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신규채용 시 기업이 노조에 통보를 해야 하는 곳은 11.6%(84곳)으로 나타났고, 협의를 거쳐야 하는 기업은 4.0%(29곳), 노조의 동의를 얻어야 직원을 뽑을 수 있는 곳도 0.4%(3곳) 있다.

고용절벽의 해결책으로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임금피크제(일정 연령이 되면 임금을 삭감하는 대신 정년을 보장하는 제도)’ 도입도 일부 강성노조의 반대로 쉽지 않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임금피크제를 실시할 경우 정년 연장으로 인한 비용에서 약 26조원을 절감할 수 있다. 이 비용을 청년 고용에 사용하면 내년에는 3만4000명, 2020년에는 7만3000명을 추가 고용할 수 있는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임금피크제에 대해 노동계는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은 다음달 15일 2차 총파업을 선언했고, 한국노총도 총파업 찬반투표가 가결되면 다음 달부터 파업 등을 진행하며 저항하겠다며 버티고 있는 상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액연봉을 받는 ‘귀족노조’의 임금이 생산성이 아닌 ‘머리띠’에서 나오고 있고, 심지어 자신의 자리를 세습하려 하고 있다”며 “정규직 과보호를 걷어내는 것이 노동시장 개혁의 일순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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