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금융 사고 피해자들의 끝나지 않는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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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금융 사고 피해자들의 끝나지 않는 고통
  • 배나은 기자
  • 승인 2015.05.21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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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부 배나은 기자

[매일일보 배나은 기자] 살아가면서 우리가 금융 사고에 휘말릴 확률은 얼마나 될까. 적어도 한국에서 살고 있다면, 금융사를 통한 개인정보 유출 정도는 모두 경험해 봤을 것이다.

여기서 운이 조금 더 나쁘다면 스미싱이나 금융사의 무단인출 사고, 혹은 투자 사기 등을 겪을 수도 있다. 금융사고로 볼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보험을 들었다면 약관대로 보상을 요구하고도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 확률은 복불복. 한국은 금융 사고라는 지뢰가 아주 많은, 평화와는 거리가 먼 공간인 셈이다.

문제는 이렇게 지뢰가 많은 공간에서 지뢰를 밟은 사람들에 대한 사후 처리다. 동양사태나 카드사 정보유출 사태처럼 피해 규모가 크고 언론과 금융당국에서 주목한 바 있는 사건들조차 보상이나 관련자 처벌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동양사태의 경우를 보자. 당초 지난 15일 오후 2시와 오전 10시 각각 열릴 예정이던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의 항소심 선고공판과 이혜경 전 동양그룹 부회장의 1심 선고공판은 각각 이달 22일, 27일로 미뤄졌다. 동양그룹 미술품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에 대한 1심 선고 역시 미뤄졌다.

이날 동양피해자들은 전국적으로 모여 본 법정을 가득 메우려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사전 공고도 없이 날짜를 변경했고, 피해자들은 이 사실을 우연히 하루 전에 알게 됐다. 피해자들은 지금도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그러나 이들을 돕고 지원해야 할 금융당국은 솜방망이 처벌과 관리 부실 등으로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소송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의 동양증권은 유안타 증권으로 이름을 바꾸고 승승장구 하고 있다. 피해자들의 아픔을 피해자들만 짊어지고 가고 있는 셈이다.

카드사 정보유출 사태의 경우, 카드사들의 비협조적인 태도로 인해 소송이 지지부진하게 길어지면서 공소시효를 넘기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이를테면, 최근 얼마간 카드사들은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확인한 내용을 캡쳐해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해 사실을 카드사에서 확인하고, 그걸 다시 카드사에 제출하는 번거로운 행위를 왜 해야만 하는지. 그런 부분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도 없다. 물론 이에 대한 대책은 여전히 없다. 지켜보는 이들만 피가 마르는 상황인 셈이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피해를 입한 주체가 아닌 피해를 입은 주체들이 고립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상황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가해자에 대한 분노는 옅어지고 오히려 피해자들이 ‘지독하다’거나 ‘지겹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도 물 밑에는 이슈화 되지 않은 각종 금융 사고들이 잠겨 있다. 피해자들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혼자 뛰어다니다가 지쳐 포기하거나 긴 시간 동안 고통을 받은 대가로 보잘 것 없는 피해 보상을 받는다. 피해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일어난 피해에 대해 누군가는 반드시 충분한 책임을 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매번 ‘다음부터는’ 잘하겠다며 불완전한 개혁안을 내놓고 책임을 회피하는 금융 당국과 쉬쉬하며 피해사실을 숨기거나 흥정에 나서는 금융사들이 있는 한, 아무리 대단한 신기술을 도입한다 해도 금융사고 피해자들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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