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식 ‘無爲 외교’, 급변상황에 한계 봉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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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식 ‘無爲 외교’, 급변상황에 한계 봉착
  • 김경탁 기자
  • 승인 2015.05.20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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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중러 합종연횡 본격화…“위기 모르는 게 진짜 위기”

[매일일보] 최근 미국과 일본이 ‘新밀월 시대’를 대내외에 선포하고 중국과 러시아도 유례없는 밀월 관계를 만드는 등 한반도 주변 4강이 합종연횡을 통한 묘한 긴장감을 키워가는 가운데 남북한만 변화되는 동북아정세에 적절한 대응을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그렇치 않아도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나라였다가 3대 독재 세습 이후 고립을 더 심화하고 있는 북한이야 어찌해볼 수 없는 고정악재로 치더라도 ‘내치’에 비해 ‘외치’를 강점으로 내세웠던 박근혜정부가 제대로 된 외교적 대응을 하기는커녕 정확한 상황인식도 하지 못하는 모습은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다.

▲ 해맑은 대통령과 심각한 외교안보 책임자들.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외교안보장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통해 한복 외교를 한번 펼칠 때마다 국정수행 지지도가 호전될 정도로 박근혜정부의 외교·안보는 그동안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하고 있다’는 호평을 받아왔다.

특히 집권 초부터 최근까지 박 대통령이 대일·대북관계에서 내세웠던 ‘원칙주의’는 대통령의 강고한 리더십을 갈구하는 국민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던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지금까지 박 대통령과 박근혜정부 외교안보팀이 견지해온 ‘원칙주의’라는 것이 사실 ‘뭔가를 하는’ 원칙이 아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원칙이었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일례로 대북관계에 있어서는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북한의 사과가 선행되지 않는 한 5·24조치 해제를 비롯한 남북간 교류 확대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고, 대일 관계에서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와 조치를 하지 않는 한 한일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는 식이다.

물론 이러한 원칙주의는 당위적으로 옳은 것이고, 국민적 공감대도 당연히 큰 만큼 이제와서 이러한 원칙을 뒤집거나 흔들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위의 외교’로는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제대로 된 적기대응을 할 수 없고, 멍하니 있다가 혼자서 손해보는 외교적 낭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단적으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미국 순방을 통해 신밀월 시대를 여는 동안 한국은 넋을 놓고 구경만 하고 있다가 최근 방한한 존 케리 국무장관을 비롯해 미국 조야의 핵심인사들의 한일 과거사 갈등에 대한 모호한 중립적 태도에 서운함만 커지는 상황이다.

한국 정부와 대비되는 것이 대일 관계에 있어 누구보다 강고한 반일 감정을 보여온 중국인데, 최근 반둥회의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아베 총리와 두 번째 정상회담을 하고 관계개선을 모색하는 실용주의적 태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18일 오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뒤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더 큰 문제는 현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한 이러한 비판적 시각을 대하는 우리 정부의 인식이다.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지난 4일 국회 현안 질의에서 ‘외교 고립’이나 ‘외교전략 부재’ 등에 대한 비판에 대해 “과도한 해석이고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며 적극 반박한 바 있다. 

특히 외교부는 아베 총리의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에 대해 “이번 연설을 계기로 국제사회에 과거사 문제에 대한 관심과 인식의 저변을 넓혔다”고 항변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에 대해 당시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외교가 위기에 처했는데 외교장관은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고 다 잘했다’고 하고 있다”며 “위기가 위기라는 것을 알아야 기회로 만들 수 있는데 모르고 있는 게 심각한 위기”라고 질타하고 사퇴를 요구했다.

여당이라고 평가가 좋은 것은 아니다.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이 시점에서 보면 외교 문제에 점수를 주기 매우 어려운 상황까지 왔다”며 “일본이 어떻게 하면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하는데 단호히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장관이 사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당 정병국 의원 역시 “대한민국 외교부가 대처하는 태도를 보면 전혀 방향이 없다”면서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제대로 대처 못하는 것을 국민들이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당 소속인 나경원 외교통일위원장조차 “외교정책 성공·실패를 판단함에 있어서 국민 자존감과 정서는 매우 중요한 잣대인데, 지금 국민이 느끼는 감정은 외교정책이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딱딱하지 않나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 위원장은 “전략적 모호성 뒤에 숨어서 중요한 판단을 미룬 것이 지금 외교부에 대한 비판을 초래하지 않았나 지적하고 싶고, 역사 문제를 다룰 때도 시기와 방법 등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있다”면서 “국익관점에서 전략적으로 수정할 것이 없는지 검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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