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관치경영의 끝, 대한민국 상장1호 건설사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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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관치경영의 끝, 대한민국 상장1호 건설사의 몰락
  • 임진영 기자
  • 승인 2015.04.15 1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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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설부동산부 임진영 기자

[매일일보 임진영 기자] 대한민국이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로 뜨겁다.

자원외교 비리 관련으로 검찰 수사 중 자살한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은 현직 총리와 청와대 고위관계자, 도지사를 포함한 정치권 핵심 인사 100여명에게 150억원 이상의 뇌물을 건넨 의혹을 받고 있다.

그러나 성완종 회장은 그를 둘러싼 수많은 의혹을 스스로 결자해지 하는 길이 아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성 회장의 자살과 함께 그가 이끌었던 경남기업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경남기업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설립돼 대한민국 건설사 중 두 번째로 오래된 역사를 지닌 63년 전통의 건설사다.

1965년 11월 태국 중앙방송국 타워신축공사 수주를 따내며 국내 건설업계 최초로 해외진출을 이뤄낸데 이어, 1973년 2월 국내 건설사 가운데 최초로 기업공개(IPO)에 나서 주식시장에 입성한 ‘대한민국 주식시장 상장1호 건설사’라는 역사를 지니고 있는 유서 깊은 업체다.

그 전통만큼이나 경남기업의 외양만은 화려해서 매출 2조원 이상, 2014년 기준 시공순위 26위에 달했으며 한때 주식은 1주당 22만원에 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성 회장이 ‘정도경영’이 아닌 정치권과 결탁해 관치경영에 나선 결과는 참혹했다.

경남기업은 업계 불황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의 ‘랜드마크 72’ 빌딩 등 무리한 투자로 수차례의 워크아웃을 맞았다.

여기에 수백억 대의 돈을 정치권에 끌어다 써서 부정한 방법으로 회사 회생을 이끌어내고, 자원외교의 떡고물을 얻어먹으려고 했던 결과는 검찰의 사정 칼날이었다.

수장이 한눈을 팔면서 경영실적도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경남기업은 1827억원의 영업적자와 265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고, 전액 자본 잠식 상태에 빠진 끝에 15일 한국거래소에서 상장 폐지됐다.

상장1호 건설사로서 42년 만에 주식시장에 퇴출된 경남기업의 상장 폐지 마지막 날 주식은 113원을 기록, 관치경영의 말로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물론 관치경영이 전적으로 재계만의 잘못은 아니다. 지난 시절 군부독재정권이 통치자금 마련을 위해 재벌 총수들을 압박했고, 실제로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5년 정치자금을 적게 냈다는 이유로 당시 재계 순위 6위권의 국제그룹을 공중분해 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도 뿌리 깊은 관치경영의 폐해는 개선되지 않았다. 90년대 말 재계 순위 1~2위를 다투던 현대그룹과 대우그룹은 관치경영의 댓가로 그룹 해체라는 운명을 맞았다.

반면 현대와 대우보다 상대적으로 정치권과 거리를 두던 삼성그룹은 3위권 재벌에서 오늘날 국내 최고 재벌은 물론이요, 굴지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편, 현대그룹과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이들 그룹의 산하 건설회사인 현대건설과 대우건설은 건설업 본연의 ‘정도경영’에 치중했다.

그 결과 현대건설은 여전히 시공순위 1~2위권을 유지하며 과거 통합 현대그룹 시절의 현대가 정통성을 잇는 회사로 인정받고 있다.

대우건설 역시 금호아시아나 및 산업은행 등 인수자가 바뀌는 부침을 겪긴 했지만 건설 한길만을 판 결과, 꾸준히 업계 3~5위권을 유지하며 공중분해 된 대우그룹 계열사 중 유일하게 과거 ‘대우’ 시절의 이름값을 하는 회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 건설사의 시초인 경남기업의 말로와 삼성그룹의 현재, 그룹 해체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체질 개선 끝에 과거 통합 현대·대우그룹 시절의 명맥을 잇는데 성공한 현대건설과 대우건설의 현주소는 ‘관치경영’의 댓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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