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실적 만능주의 은행과 불안한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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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실적 만능주의 은행과 불안한 노인들
  • 배나은 기자
  • 승인 2015.03.05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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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배나은 기자] 얼마 전 부모님으로부터 주가연계증권(ELS)을 비롯한 각종 투자 상품에 가입해도 되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비슷한 시기에 은행 예적금 만기가 도래해 계좌가 있는 세 군대의 시중 은행을 하루에 돌았는데, 창구 직원들이 모두 그런 상품들을 권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상품을 권유하는 과정에서 원금 손실 가능성을 말해준 곳이 한 곳도 없었다는 점이다. 자신도 가입했다. 지금 시기를 놓치면 후회할 것이다. 이런 감정적인 말만으로는 도무지 그 상품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었던 부모님이 결국 그 자리에 없었던 내게 상품 정보를 물어보셨던 셈이다.

모 은행 직원의 경우 부모님이 계속 거절을 하자 일단 예금은 다시 가입을 시키고 이자가 들어온 입출금 통장을 보여주며 ‘이 돈이면 그래도 (자신이 권유한 투자 상품 중) 하나를 들 수 있으니 이걸로라도 일단 진행하자’며 막무가내로 부모님을 설득했다고 한다.

또 다른 은행의 경우 투자 상품 ‘영업’을 하는 동안에는 예금 금리를 원래보다 더 낮춰 부르며 고위험 투자 상품의 필요성을 역설하다가 가망이 보이지 않자 포기하고, 원래 부모님이 받을 수 있던 제대로 된 금리를 설명해줬다고 한다.

이런 일은 우리 부모님만의 일은 아닌 모양이다. 부모님이 또래 동창 모임에 가면 원금 손실 가능성을 모르고 가입했다가 손실을 보고 항의 하러 내점했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는 하소연이 제법 나온다고 한다.

그 자리에 있던 한 부모님 친구 분 역시 외국계 은행 지점 관리자가 민망할 정도로 끈질기게 문자로 ‘영업’을 진행해 내방해 보니 권하는 상품은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각종 투자 상품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상품의 장단점과 위험성에 대한 정확한 설명 대신 ‘자신도 가입했다’는 호언장담이 주로 이어진 건 거기에서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나와 내 주변 또래의 경우에도 종종 그런 권유를 받지만, 상대적으로 정보 접근성이 높아 적어도 최악의 상황에 대한 정보는 알고 투자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중장년층과 노인층의 경우는 좀 다르다. 필사적인 젊은 창구 직원들에 대한 동정심으로 가입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모양이다.

고객 자산 관리에 대한 열정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장 직원들의 이런 필사적인 ‘영업 활동’을 보고 있자면 최근 해당 은행 행장들이 ‘영업력 강화’를 강조했던 것이 떠오른다.

어찌 생각하면 실적에 쫓기는 현장 직원들과 거기에 휩쓸리는 고객 모두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모 은행 노조 관계자의 ‘은행은 원래 이익을 목적으로 운영 되서는 안 되는 곳’이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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