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기업, 좋은 떨림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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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대기업, 좋은 떨림이 사라진다
  • 정두리 기자
  • 승인 2015.01.21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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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정두리 기자] 우리나라 젊은 인재들이 새해벽두부터 이상한 고민에 빠졌다.

다름 아닌 진로 문제다. 진로 문제야 그 나이 또래에 일상적으로 갖는 무한한 고민거리의 단골메뉴 중 하나겠지만 이번엔 좀 다른 이유에서다.

자신이 목표로 삼던 기업들의 어두운 실상이 양파껍질 까는 것 마냥 끊임없이 드러나고 있다. 업계 톱자리를 지켜온 굴지의 대기업의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6월 취업포탈 인크루트가 실시한 ‘대학생들이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 설문조사에서 우수한 복리 후생, 감성 마케팅 등에 힘입어 삼성전자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대학생들에게 있어서는 한마디로 ‘폼 나는’ 직장인 셈이다.

하지만 반년이 지난 현재 대학생들의 꿈이었던 대한항공은 악성댓글을 유발하는 회사로 전락했다.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은 경영진의 우월적 전횡이라는 비판과 함께 항공업계의 수직적이고 봉건적인 조직문화의 단면을 내비췄다. 그 후폭풍은 예비 항공인들의 꿈도 망설이게 하는 듯하다.

위메프도 빼놓을 수 없는 뜨거운 감자다. 수습사원 11명을 대상으로 2주 동안 고강도의 업무를 시키기도 모자라 깡그리 전원 해고시킨 일은 신개념 갑질회사라는 불명예를 낳았다.

패션업계의 성공을 꿈꾸는 이들은 회의감에 사로잡혀 있다. 이상봉 디자인실의 ‘열정 페이’ 논란으로 수면위로 드러난 패션업계의 임금 착취는 패션디자인의 길을 선택한 젊은이들의 신념 자체까지도 무모하게 만들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취업해야하는 곳은 높은 인지도, 업계 1위가 우선순위가 아닌, ‘그저 무탈한’ 회사라는 우스갯소리도 들려온다. 그간 기업들이 내부문제들로 얼마나 곪아있는지, 우리가 모르는 병폐들은 또 얼마나 있는지 지레 걱정하게 되는 대목이다.

국내 대기업들이 자사에 맞는 뛰어난 인재상을 선발하기 위해 이리저리 채용제도도 손보고 맞춤형 스펙도 요구하는 등 부산을 떤다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그러한 인재를 품을 수 있는 회사의 투명하고 상식적인 책임경영이다.

책임경영의 부재에 빠진 기업들을 바라보는 시선들은 더욱 싸늘해지고 있다. 대중들은 왠지 속은 것만 같은 기분도 든다.

고개를 바짝 처들고 올려다봐야하는 대기업들의 고층빌딩까지 점점 위압감을 풍기고 있는 요즘이다. 학생 때만해도 위풍당당한 기세, 훤칠한 자태에 기분 좋은 떨림까지 느꼈던 게 거짓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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