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할수록 내려놓을수록…
‘역설’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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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할수록 내려놓을수록…
‘역설’의 리더십
  • 한아람 기자
  • 승인 2014.12.08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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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對 인물 ②] 정치판 바꾸는 정치신인들 안철수&박원순

[매일일보 김경탁·한아람 기자]

박원순, 조용한 시정·조용한 유세로 재선 후 차기대권 ‘최강자’ 등극
안철수, 전대미문의 ‘양보정치’로 급부상…‘욕심’ 보일 때마다 급추락

세상에는 수많은 라이벌이 존재한다. 그중에는 서로가 서로를 눌러야 하고 결국에는 어느 한쪽만 살아남게 되는 ‘적대적 라이벌’이 있는가 하면 서로 경쟁을 하는 과정에 함께 성장해나가는 관계인 ‘공생적 라이벌’도 있다.

갈등과 대립, 끝장 대결만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 대한민국 정치권에도 다양한 라이벌과 맞수가 있는데, 이러한 라이벌 관계는 외부인의 시선으로 볼 때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정치판을 이해하는 결정적 지렛대가 될 수 있어서 정치권의 라이벌을 조명하는 기획을 시작했다.

매일일보의 ‘인물 對 인물’ 기획 두 번째 주인공은 두 사람 모두 데뷔한지 얼마 안되는 정치신인이면서 동시에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철수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이다.

▲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왼쪽)과 박원순 서울시장. 사진=연합뉴스

지금으로부터 3년여 전인 2011년 10월 26일, 정치에 발을 처음 들여놓는 무명의 시민운동가이자 인권 변호사가 이렇다 할 정당기반도 없이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여당 소속의 유력 정치인을 누르고 서울시장에 당선되는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이 사건의 주인공은 박원순 현 서울시장이지만 사람들은 이 일을 ‘박원순의 기적’이 아닌 ‘안철수의 기적’이라 부른다.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이면서 ‘젊은이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조사에서 오랫동안 1위를 달렸고, 이미 오래전에 위인전기가 출판됐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안철수 당시 서울대 교수가 그 해 9월 박 시장 지지를 선언하며 불출마한 일은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인지도, 정치경력, 조직력 등 모든 면에서 압도적이었던 나경원 새누리당 후보를 상대로 정치 초보 박원순 후보는 두 달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54.5%라는 압도적 과반 승리를 거뒀다.

기적적 승리 이유에서 ‘안철수 효과’가 전부는 아니었지만 이 사건은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정치신인 안철수를 최강 대권주자의 반열에 올려놓았고, 실제 데뷔 의사를 밝히자마자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모든 여론조사에서 50%를 넘나드는 압도적인 지지율을 그에게 안겨줬다.

그러나 그 후 3년간의 정치역정은 두 사람의 입지를 180도 바꿔놓았다. ‘정치계의 새바람’이라는 타이틀로 2012년 대권에 도전하려고 했던 안 의원은 산전수전을 겪은 끝에 결국 한 자릿수 지지율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이어가고 있는 반면 이름조차 생소하던 박 시장은 현재 2017년 차기 대권주자 최상위권을 달리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조용한 리더십’의 승리

리얼미터의 11월 4주차 여론조사를 보면 박원순 서울시장은 8주 연속 차기 대권지지율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유사 조사에서 박 시장이 1위를 놓치는 경우는 문재인 의원이 어떤 정치적 계기로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거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질문지에 포함될 때 밖에 없다.

박원순 시장은 과거 참여연대 사무처장과 법무법인 산하의 고문변호사를 역임, 대표적 시민운동가로 활동해왔으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변호사이자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맡아왔다.

그 분야(?)에서는 나름 유명인사였던 박 시장은 정치인으로서 대중들에게 인지도는 전무한 상태였음에도 청렴하고 곧은 ‘시민운동가’ 이미지와 안철수 의원의 지지를 받아 2011년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그 후 그동안 눈에 쉽게 띄는 ‘개발형 사업’에 몰두해오던 앞선 시장들과 달리 “조용하고 살기 좋은 서울을 만들겠다”며 서울시민의 질을 높이는 ‘조용한’ 사업에 몰두했던 박 시장은 지난 선거에서 ‘한 것 없는 시장’이라는 공세를 받기도 했다.

박원순 시정의 결과로 서울시립대학교 반값등록금, 타요 버스 등을 성공시켜 서울시민의 이목을 끌었으며, 취임 2년 만에 서울의 도시경쟁력을 세계 9위에서 6위까지 끌어올리는 등 눈에 띄는 성과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를 기반으로 박 시장은 2014년 6월 막강한 인지도와 화려한 정치경력을 갖고 있는 정몽준 새누리당 후보를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했다. 재선 성공 이후 박 시장은 대권주자로서 탑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여권 최강이면서 선거 맞상대였던 정몽준의 지지율 급락과 극적 대조를 이뤘다.

조용하지만 실생활에 와 닿는 정책, 날카로운 정치적 논리보다는 시민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무딘 이미지, 선거가 끝난 후에 단 한명의 기자도 대동하지 않고 조용히 진도 팽목항을 찾는 모습 등은 ‘정치인’에 대한 국민 일반의 선입견을 정면으로 깨뜨리는 신선한 모습이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박 시장에게 다음 대선에 나오지 않을 것을 약속받으려고 안달했고, ‘임기를 채우겠다’는 발언을 이끌어낸 후에야 만족했다. 대권주자 박원순의 파괴력에 대한 여권의 노심초사한 마음을 엿볼수 있는 장면이었다.


파란만장한 2년…압축적 정치경험

2012년 대선 출마 포기 후 2013년 4월 재보궐 선거를 통해 공식적으로 국회에 입성한 안철수 의원은 약 6개월 후 신당 ‘새정치연합’을 출범시켰고, 다시 몇 개월 지나지 않은 2014년 3월, 제1 야당인 민주통합당을 흡수(?)한 신당 새정치민주연합의 공동 대표가 되었다.

그러나 안 의원이 늘 ‘구태 정치’라고 규정짓던 기존 거대 정당과 손을 잡은 것에 대해서는 반응이 엇갈렸으며 지지율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일부 지지자들은 ‘역시나’라며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고, 또 다른 일부는 앞으로의 행보에 더 기대하겠다는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통합 이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거대정당을 이끈다는 것이 정치신인 안철수에게 너무 버거운 것 아니냐는 의문을 자아내는 상황이 잇따라 벌어졌다. 5개월 만에 스스로 대표직을 내놓기까지 ‘3개의 산’이 있었는데, 그중 첫 번째가 무공천 논란이었다.

안 의원은 당시 얼마 남지 않은 6월 지방선거에 일체 당 공천을 하지 않는 ‘무공천’ 공약을 내걸었다. 당의 공천을 받기 위해 후보자들이 국민이 아닌 유력 정치 실권자에게 줄을 서는 폐단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취지와 목표 자체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좋은 일이지만 ‘타인의 기득권을 양보시켜서 자신의 정치자산을 쌓겠다’는 태도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아서 강력한 당내반발을 낳았다. 새누리당의 정당공천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몰살의 공포가 더해지면서 갈등은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결국 안 의원은 “국민과 당원의 뜻 묻겠다”며 당원투표와 여론조사에 결과를 맡겼지만 뚜껑을 열어본 투표 및 조사 결과는 ‘무공천 반대’였다. 자신의 입으로 “정치 생명”까지 언급하며 약속했던 무공천 공약을 다시 주워 담게 되면서 당 대표로서 첫 번째 실패를 맛봐야 했다.

그 후 두 번째 세 번째 ‘산’이였던 6월 지방선거와 7월 재보선 선거에서도 안 의원은 번번이 좌절했다. 특히 세월호 참사로 정부여당을 향한 국민의 불신과 원성이 가득했음에도 두 번의 선거에서 단 한 번도 야당이 승리를 거두지 못한 점, 두차례의 선거 공천 과정에 ‘안철수 사람 챙기기’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당이 내홍에 시달린 점 등은 안 의원의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대표직에서 물러난 안 의원에게 남은 것은 5~6%라는 초라한 지지율이었다.

박원순과 안철수 두 사람은 모두 이전까지 대한민국 정치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새로운 형태의 리더로 등장했다. 비록 지금은 안철수 의원 쪽이 조금 주춤거리는 모습이지만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큰 그림을 그릴 때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인물임은 분명하다.

최근 옛 대선 캠프 관계자들을 잇따라 만나면서 재기의 용틀임을 하고 있는 안 의원은 한 모임에서 “압축적으로 경험한 2년이었다”고 지난 시기를 회고하면서 자신의 최근 근황에 대해서는 정부의 창조경제 비판과 정책 대안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안 의원의 최근 행보는 이러한 기대감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확신을 준다. 정치에 데뷔한지 불과 만 3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천국과 지옥을 모두 경험한 그가 과연 어떤 학습능력을 보여줄지 눈길을 계속 주게 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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