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百家爭鳴)과 중구난방(衆口難防) 구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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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百家爭鳴)과 중구난방(衆口難防) 구별법
  • 장성준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14.11.02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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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난세(亂世)에는 민생이 더욱 피폐해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세상 구제를 위한 온갖 사상이 새롭게 나타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중국 역사에서 BC 8세기부터 BC 3세기까지 이어진 춘추전국시대는 수많은 영웅과 호걸이 천하를 놓고 쟁투를 벌인 시기였다. 군웅들이 할거(割據)하던 이 500여년 동안 천하 경영을 뒷받침하기 위한 다양한 치세(治世)와 관련된 사상 역시 등장했다.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사상을 설파했던 이들이 바로 제자백가(諸子百家)이다. 이들은 자신의 사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백가쟁명(百家爭鳴)하며 시대를 풍미(風靡)했다.

가장 대표적인 학파가 공자를 중심으로 한 유가(儒家)이다. 또한 노자와 장자의 도가(道家), 한비자로 대표되는 법가(法家), 묵자가 중심인 묵가(墨家) 등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부국강병을 위한 수많은 사상들이 명멸했던 춘추전국시대는 법가 사상을 채택한 진(秦)나라가 중국을 통일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들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를 제공해 주고 있다. 난세를 극복하고 민생을 돌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도 난세임이 분명하다.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는데다가 북핵에 따른 파고가 날로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강대국에 둘러싸여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지정학적 환경 또한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글로벌 경제 위기에 따른 여진이 계속되고 있어 경제마저 심상치 않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더니 위기가 겹치기로 몰려오고 있는 형국이다.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선 지혜를 모아야 한다. 막혀있던 세월호 문제도 봉합됐다. 따라서 정치권에서는 국가 위기 극복을 위한 논의를 시급히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을 지금 여야에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국민들의 일반적 시각이다. 당장 헌법재판소가 총선 인구기준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자마자 여야는 이에 따른 이해득실만을 따지며 각종 선거제도에 대해 중구난방식의 의견을 쏟아 내놓고 있다. 개헌에 대해서도 차분한 논의보다는 정파적 이해에 유불리만을 우선시 하는 분위기다. 자신들 밥그릇에는 이렇듯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민생과 관련해서는 한없이 느긋한데 어떤 기대를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상대의 말은 경청하지도 않은 채 사방에서 마구 지껄여 대는 것을 중구난방(衆口難防)이라 한다. 백가쟁명은 대의를 내세우기에 후대에도 영향을 미친다. 반면 중구난방은 그야말로 소음일 뿐이다. 지금 우리 정치권의 논의를 백가쟁명이라고 말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백가쟁명이란 말 그대로 수많은 정파나 학파가 국가 경영의 순방향을 놓고 서로 논쟁하는 것이다. 정파의 이해가 우선이 아니다.

백가쟁명은 부국강병을 통한 태평성대 실현이라는 명분을 가졌기에 오늘날에도 교훈을 준다. 지금 정치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논쟁이 100년 뒤는 차치하고라도 10년 뒤에라도 값어치 있는 것이 될 수 있을까. 이러니 백가쟁명이 아니라 중구난방일 뿐이라는 것이다.

지금 여야의 주장이 백가쟁명으로 평가 받을 수 있을지 중구난방이 될지 아는 방법은 간단하다. 자신이 집권했을 때 했던 말을 되짚어보면 된다. 결국 흐지부지 됐지만 개헌이나 선거제도에 대한 논의는 역대 정권에서도 있었다. 그때는 왜 접어야 했고, 이제는 왜 필요한지에 대해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우선이다. 새삼스레 지금이야말로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시기인 것처럼 외쳐서는 결코 백가쟁명의 반열에 올라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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