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인의 130인에 대한 투쟁으로 혁신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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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인의 130인에 대한 투쟁으로 혁신 불가능
  • 장성준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14.09.2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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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란 말이 있다.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가 1651년에 쓴 『리바이어던』에서 나온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서로 싸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적한 말이다. 당시 영국은 청교도혁명으로 크롬웰이 정권을 장악해 찰스 1세를 처형하는 등 혼돈의 시기였다. 홉스가 이 말을 쓴 것은 인간은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연권’을 갖고 있지만 모두가 이를 무한히 추구할 경우 결국은 무자비한 투쟁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최근 박영선 원내대표가 탈당도 불사하겠다며 당부를 거부하서면서 벌어졌던 새정치민주연합의 내홍(內訌)은 표면적으로는 수습 국면에 들어갔다. 박 원내대표가 이번 사태에 대해 사과한 뒤 당무에 복귀하고, 문희상 의원을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하면서 여야 협상에 나서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보여준 제1 야당의 모습은 ‘130인의 130인에 대한 투쟁’으로 비쳐질 정도였다. 각 계파들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혼돈과 다를 바가 없었다. 계파 간의 응집력도 이완돼 각인각색(各人各色)의 모습마저 보였다.

박 원내대표가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를 공동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려다 불거진 이번 사태는 제1 야당의 민낯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여당을 위해 힘을 보탰던 인사를 비록 공동이라고 하더라도 비대위원장에 앉힌다는 것에 많은 의원들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하는 자괴감도 들었을 것이다. 환골탈태(換骨奪胎)를 위해 보수적 인물을 영입한다 하더라도 이건 아니다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 뒤집어 생각해보면 작금의 새정치민주연합은 이상돈 교수와 같은 인물을 비대위원장에 앉힐 수밖에 없을 정도로 위기상황에 빠져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는 10%대 지지율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다.

어느 정당이나 계파는 있기 마련이다. 정치적 입장이나 국가 발전전략에 대한 의견을 모으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계파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각 계파가 보여준 모습은 국민들의 기대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과거의 계파처럼 통일된 행동을 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이합집산을 할 수도 있다. 생각이 다르면 이를 명확히 밝히는 것 역시 중요하다. 문제는 많은 국민들이 이번 사태에서 보인 야당의원들의 행위를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야합으로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란 때로는 물 밑에서 조율해야 할 것이 있다.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밝힐 경우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 내에서도 이번 사태로 더 이상 외부인사 영입은 어렵게 됐다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는 이유이다. 의원들의 생존만을 위한 이기심은 당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 오히려 당을 벼랑 끝으로 내몰 위험성마저 있다.

신화 속의 시지프스는 끝없이 바위를 밀어 올리는 일만을 반복한다. 수권정당으로서의 비전은 고사하고 이전투구로 날을 지새운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의 모습은 현실 속의 시지프스 모습으로 치환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비극이다. 야당이 건강하지 않은 시대를 산다는 것은 국민에게도 불행이다.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이 위기에 처해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위기(危機)는 말 그대로 위험한 기회(機會)다. 위험과 기회는 별개(別個)가 아니란 말이다. 위기와 기회가 혼재하고 있다면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는 스스로에 달려 있다. 국민은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선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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