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피아가 장악한 ‘절망사회’…골든타임 끝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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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아가 장악한 ‘절망사회’…골든타임 끝났나
  • 김경탁·한아람 기자
  • 승인 2014.08.19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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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대한민국 개조하자 ④ 갈등해소 시스템이 없다

[매일일보 특별기획취재팀]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 자살률과 세계 최저 수준 출산율의 나라이다.

자살률과 출산율은 ‘절망’이 온 사회를 뒤덮고 있음을 드러내는 지표이다.

온 사회에 ‘정직하게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별로 없고, ‘원칙과 정의를 지키는 사람은 시스템의 보호를 받는다’는 신뢰도 없다.

미래가 불안하니 더 이기적이게 되고,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없으니 꼼수와 불법에 대해 양심의 가책도 덜 느끼게 된다.

희망과 신뢰의 싹을 매 순간 짓밟는 근원을 따라가면 ‘패거리문화’가 있다.

전통(?)의 학연·지연·혈연이거나 최근 ‘관피아’ 논란으로 떠들썩한 ‘퇴직 공직자 카르텔’이든 상관없이 강력한 패거리들은 사회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면서 자기들만의 공고한 이익구조를 구축한다.

▲ 세월호 참사로 '관피아'(관료+마피아)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국내 10대 대형 법무법인(로펌)에서 활동하는 경제 부처 관료가 18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피아의 원류는 ‘패거리문화’

이탈리아에서 발원한 ‘범죄조직’을 뜻하는 단어인 ‘마피아’는 지금의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일반명사’로 등극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마피아 못지않은 조직력을 과시하며 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분야별 마피아’가 존재한다는 것이 연일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재무부(MOF, Ministry of Finance : 현 기획재정부) 출신 인사들이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끼리끼리 범죄적 활동을 벌인다는 의미에서 약자를 따서 사용되던 ‘모피아’에서 시작된 ‘○피아’라는 단어는 그 용례가 철피아(철도), 핵피아(원자력산업), 해피아(해양수산) 등 점점 다양해지더니 급기야 이제는 ‘관피아(관료집단+마피아)’ 라는 단어로 한데 묶이기에 이르렀다.

용어의 원조는 ‘모피아’지만, 모피아보다 훨씬 앞서 생겨났으면서 훨씬 큰 폐악을 낳는 것이 ‘법피아(법조)’이다.

사회시스템의 마지막 보루여야 할 사법체계는 퇴직 법관이나 검사를 변호사로 선임하면 유죄도 무죄로 만드는 ‘전관예우’ 관행으로 그 신뢰를 뿌리부터 좀먹어왔다.

각종 관피아들이 작동하는 방식은 대개가 비슷하다.

공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해 이익은 공유하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부정부패는 서로 눈감아주는 ‘의리’를 과시하는 식이다.

‘유사 깡패조직’들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겉으로는 존경받는 점잖은 모습으로 위장하고, 뒤에서는 각종 범법행위를 서슴없이 자행하는 이런 ‘조폭 지배 사회’에서 개별 기업들이나 업종별 직능단체들이 이렇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향유하는 관피아들을 영입하기 위해 높은 몸값을 지불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로비력 향상’이라는 세련된 단어로 포장된 업·단체들의 관피아 영입은 오히려 이 시스템에서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기 위한 자구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득권 카르텔’ 밖에 서있는 기술혁신 신생기업들이나 하청 중소기업, 피착취 노동자들이 재벌 대기업과의 분쟁이 생겼을 때 단 한 번도 ‘진정한 의미’의 최종 승리를 거둔 적이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공포가 낳은 입시지옥과 공무원 열풍

관피아에 의해 무력화된 공적 시스템은 사회 전반에 절망과 공포를 더욱 확산시킨다.

그런 공포가 낳은 가장 두드러지는 사회 현상 중 하나가 ‘입시지옥’과 ‘공무원 열풍’이다.

20살 언저리에 치러지는 단 한 번의 시험이 인생 전체의 ‘질’을 결정짓는다는 공포는 뿌리가 깊다.

‘학벌 카르텔’의 구성원이 되면 보다 좋은 직장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반대의 경우 착취와 멸시의 대상으로 평생을 살게 된다는 이야기가 교실에서 공공연히 거론된다.

이런 공포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의 의무교육 과정이 오로지 ‘대입’이라는 목표로 가는 과정일 뿐이라는 인식으로까지 강화됐고, 당연히 우정, 인권, 예술, 감수성은 사치스러운 가치로 치부되고 급우는 짓밟고 올라서야할 경쟁자라고 주입되어왔다.

더욱이 최근 10여년 전부터는 일정 소득수준 이하의 사람은 들어갈 엄두도 낼 수 없는 소위 ‘귀족학교’들(영어유치원, 사립초등학교, 국제중학교, 자율형사립고 등)이 등장해 학벌 카르텔의 시작을 유치원 단위로까지 끌어내리고 있다.

12년간의 의무교육기간 동안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결정된다”는 절망감을 학습시키는 경쟁적 서열화 교육에 내몰린 아이들은 한때 ‘학문의 전당’으로 불렸던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취업준비에 매달린다.

특히 IMF 국가부도 사태 이후 대학 졸업장도 취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설령 대기업에 들어간다 해도 어느 순간 구조조정으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이들은 그나마 ‘노후보장’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있다.

학벌 카르텔에라도 들어가기 위한 ‘입시경쟁’의 치열화와 셀 수 없이 많은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모습은 지금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젊은 시절의 꿈과 치기를 누리는 것은 사치일 뿐이고 일단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로 인식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 18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민주사법연석회의가 연 기자회견에서 이충재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이 여는 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병영악습’과 ‘왕따문화’의 결합

현 기성세대가 학창시절과 군복무를 하던 시기, 軍 내부의 구타·가혹행위 문제가 한번씩 터지거나 학내 폭력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나왔던 이야기는 사회의 많은 악습이 ‘뿌리 깊은 병영문화’에서 나왔고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뿌리 깊은 병영문화’라는 이야기는 거의 사회 담론의 대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반면에 최근 불거지는 일련의 병영사고들은 ‘뿌리 깊은 병영문화’보다 병영 밖 사회의 병폐가 병영내로 반영됐다는 인상이 훨씬 짙다.

바로 ‘왕따’ 문제이다.

배려·연대보다 경쟁·배제에 더 익숙한 지금의 10~20대들은 초등학교를 넘어 이제 유치원부터 ‘왕따’ 문화를 통해 나보다 약하거나 나와 다른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배제하는 수법을 습득·훈련했고, 이를 군생활에서 활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일본의 ‘이지메(집단 괴롭힘 혹은 집단 따돌림)’ 문화에서 발원한 것으로 알려진 ‘왕따’는 아이들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과거 노조 등 비순종적 구성원 탄압에 폭력적 방식을 사용하던 기업들은 10여년 전부터 ‘왕따’를 배제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기업의 노무관리 정책으로 확산된 ‘왕따’가 국가차원의 정책(?)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 이명박정부이다.

정권과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들의 ‘밥줄’을 끊기 위한 다방면의 압박이 공식·비공식적으로 이루어졌다.

젊은 시절 국가폭력에 당당히 맞섰던 사람들도 가족의 평화와 생계에 대한 위협 앞에서는 무릎을 꿇었다.

절망이 더욱 깊어지면서 부당함에 맞서는 목소리는 잦아들었고, 나 혼자라도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확산됐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이너써클’과 그 밖의 차이

▲ 보건복지부가 2일 공개한 OECD 국민의료비 통계(OECD Health Data 2014)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과 흡연율이 가장 높고, 의료비 증가 속도도 다른 어느 나라보다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회와 나라가 너희를 보호해주지 않으니 무엇을 해도 ‘무죄선고’를 받는 특권 집단 속으로 들어가라”는 가르침은 최근 발생한 ‘28사던 윤모 일병 구타 사망사건’이나 ‘세월호 참사’에서도 적용된다.

최근 10년간으로만 범위를 축소해도 총 1255명의 현역 장병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고, 대부분은 ‘신병을 비관한 단순자살’이라는 식으로 결론이 내려지는 상황에서 윤 일병 사망의 진실이 밝혀진 배경이 눈길을 끌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윤 일병의 가까운 친인척 중에 의사와 법무관 출신 변호사가 있고, 현직 국회의원 등 정치권과도 연이 닿아있다는 점이 윤 일병 사망의 진실을 ‘비교적’ 빨리 드러내는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는 윤 일병 사망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발생했으면서, 그와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훨씬 많은 사망자를 낳은 세월호 참사가 아직까지 제대로 된 진상규명 작업이 시작도 되지 못하고 있는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참사 수습과정에 단원고 피해 학생의 일부 부모들은 “배에 탄 아이들이 강남 아이들이었더라면 구조작업이나 진상규명이 지금처럼 더디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절규하면서 스스로의 가난을 탓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세월호와 국가개조…‘골든타임’은 끝났을까

세월호 참사는 각 개인이 자기 혼자 살아남는데 애쓰는 것만으로는 이 세상을 살아가기 어렵다는 인식을 퍼뜨렸고, 공감과 연대의 공간을 열었으며 국가 차원에서는 ‘국가개조’라는 화두가 제시됐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4개월이 지나도록 단 한걸음도 진전된 것은 없이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

정확한 처방을 위한 전제인 ‘정확한 진단’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진상규명 특별법은 국회에서 여전히 표류하고 있다.

여당은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라는 세월호 가족대책위의 주장이 사법체계 근간을 흔든다고 주장한다.

여당에 우호적인 세력들은 이와 동시에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마치 세월호 가족들이 더 큰 보상을 받기 위해 고집 부리는 것처럼 거짓선동을 불사했다.

전형적인 ‘왕따’의 방식이 세월호 국면을 모면하는데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 18일로 단식 36일째를 맞은 세월호 유족 ‘유민이 아빠’ 김영오 씨가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교황 이한에 즈음한 유민아빠의 입장표명 기자회견’에서 상의를 걷어 마른 몸을 드러내고 있다. 김씨가 자신의 몸을 드러낸 이유는 지난 7일 안홍준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제대로 단식을 하면 벌써 실려가야 되는 것 아닌가”라는 발언을 한 것 때문이다. 이날 김씨는 방한 기간중 세월호 유족들을 위로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감사를 전하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공식 면담을 요청했다.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이후 각종 패거리들이 ‘적폐’로 지목되며 척결의 대상으로 거론됐다.

하지만 척결의 대상으로 거론된 ‘적폐’를 해소할 힘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적폐’ 그 자체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적폐 척결’ 적임자로 지목했던 안대희 전 국무총리 후보자가 대표적이다.

대검 중수부장과 대법관을 역임한 안 전 후보자는 전관예우의 힘으로 불과 3개월 사이에 십 수억의 수입을 벌어들인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회 인사청문회 절차도 거치지 못하고 낙마했다.

소모적 논란 끝에 결국 세월호 참사에 책임을 지겠다면서 사의를 표명했던 정홍원 총리 유임이 결정됐다.

세월호 참사가 자신의 책임이라고 말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들어 세월호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일련의 인선 논란 와중에 직전까지 새누리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맡았던 황우여·최경환 두 사람이 사회·경제부총리로 2기 내각을 이끌게 됐리고 ‘경제활성화’가 전면에 제시되고 있다.

그리고 참사가 열어준 광장을 고립시키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어졌다.

주요 언론매체에서 ‘세월호’라는 화두는 거의 잊혀지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세월호 피로증’을 이야기하는 정치인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참사와 함께 시작됐던 ‘국가개조 골든타임’이 이미 끝나버린 듯한 상황에 다시 균열을 낸 것은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의 무기한 단식이었다.

여기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기도가 보태지면서 ‘광장’이 다시 열렸다.

우리에게는 '12척의 배'라는 기회가 또 주어졌다.

특별기획취재팀

▲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에 앞서 카퍼레이드를 하던 중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김영오 씨를 위로하고 있다. 사진=천주교 교황방한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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