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 크래커’ 한국, 설 자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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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 크래커’ 한국, 설 자리 없다
  • 박동준·배나은 기자
  • 승인 2014.08.12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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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대한민국 개조하자 ②성장엔진이 꺼져간다

▲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새 경제팀의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올해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기존 4.1%에서 3.7%로 하향조정했다. <자료 기획재정부, 그래픽 연합뉴스>
[매일일보 특별기획취재팀]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수장으로 제2기 경제팀이 출범했다. 최 부총리는 ‘초이노믹스’로 불리는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통해 경제활성화에 적극 나서겠다고 피력했다.

정부가 세수 부족에 시달리면서도 시장에 돈을 풀겠다고 하는 이유는 현재 한국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유사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성장-저물가-경상수지 과다 흑자’의 앙상블이 지난 1991~2010년 일본의 침체기와 패턴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실질노동인구 감소로 이어지는 성장잠재력 약화, 가계부채 1000조 등도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자리잡고 있다.

“성장동력이 절실하다”

현오석 전 부총리는 지난 4월 “‘넛 크래커’ 상황을 극복할 선도형 성장엔진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저출산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는 인구 오너스(Demographic Onus) 시대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기업들의 투자가 둔화되는 등 역동성이 약화되고 있다”며 “선진국과의 경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넛 크래커는 호두를 까는 도구로 경제 용어에서는 선진국에는 기술과 품질 경쟁에서 밀리고 후발 개발도상국에는 가격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이 올 초 발표한 ‘2013년 주요국별 산업기술 수준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기술 수준을 100으로 했을 때 한국은 83.9를 기록해 일본(94.9)과 유럽(94.8)에는 여전히 뒤떨어진 반면 중국(71.4)에는 앞섰다.

그러나 주요 산업기술에서 중국은 빠른 속도로 한국을 추격하고 있다.

중국은 디스플레이 기술에서 한국과의 격차를 2011년 26.95에서 2013년 19.3으로 줄였고, 반도체는 17.3에서 13.1로, IT융합은 14.9에서 11.7로 축소했다. 한국이 기술분야에서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는 크게 좁히지 못하면서 동시에 중국에는 바싹 쫓기는 상황이 된 것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5년 후 한국 수출을 전망한다’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수출구조가 노동집약적 저부가가치 산업에서 IT를 포함한 고부가가치 산업 모델로 변하고 있다”며 “아직 핵심부품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지만 일부 자본재 업종의 경우 중국의 한국 따라잡기 과정이 상당부문 진전된 상황인 만큼 향후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한때 고객국가였던 중국이 경쟁국으로 부상했다는 의미다.

이는 한국의 경제성장률 둔화로 직결됐다. 지난 2008~2012년 이명박 정부 경제성장률은 평균 2.9%로 3% 미만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후 소폭 반등해 2013년 3분기 3.4%, 4분기에는 3.7%로 3%대를 회복했다. 그러나 이는 평균 5%대의 성장률을 기록하던 2000년부터 2007년 무렵과 비교하면 현저하게 떨어지는 수치다.

이마저도 최근 민관을 중심으로 올해 성장률 전망을 낮추고 있는 실정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발표하면서 올해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기존 4.1%에서 3.7%로 0.4%포인트 대폭 하향조정했다.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2만달러의 늪에서 수년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1인당 GDP는 2003년 1만3451달러에서 지난해 2만4329달러로 늘어나는데 그친 반면, 2003년 각각 2만3320달러, 2만3859달러던 싱가포르와 홍콩은 2013년에 각각 5만4776달러, 3만7777달러로 급증했다.

▲<자료 기획재정부, 그래픽 연합뉴스>

가계부채 1000조 시대...대책은 ‘우왕좌왕’

1000조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의 뇌관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5월 발표한 ‘1분기 중 가계신용(잠정)’ 통계에 따르면 지난 3월말 기준 가계신용은 3개월 전보다 3조4000억원 늘어난 1024조8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가계대출과 판매신용을 합한 수치인 이 가계신용은 지난해 2분기부터 올 1분기에 걸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매 분기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이 중 상당수는 주택담보대출이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중도 2004년 이후 증가세가 지속되고 있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늘어난다는 것은 소득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가계 빚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의미인데, 현재 이미 160%를 넘어선 상태다.

저소득층 금융대출가구의 채무상환비율 역시 56.6%로 가계부채 부담이 중·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에 집중되고 있다.

이처럼 가계부채가 가파른 증가세를 보임에 따라 국내외 전문가들의 우려도 이어지고 있다.

김영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가계부채의 위험에 대한 이해와 위험 관리 체계의 설계방향’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규모와 증가속도, 질적인 측면에서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가계부채가 소비와 성장잠재력을 약화시키는 임계치에 도달했다”고 분석했다.

실제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85%에 달하면 위험 수준으로 볼 수 있는데 지난해 현재 우리나라의 GDP(신기준)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85.6%다.

새 경제팀은 가계부채를 적정수준으로 관리하고 연착륙을 유도해 리스크관리에 집중하겠다는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일차적으로는 12조원 규모의 재정보강을 통해 전반적인 가계소득과 기업소득의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키고, 비은행권 등 취약부문을 철저히 관리하면서 각종 세제유인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달부터 시행에 들어간 경제팀의 LTV(주택담보인정비율) 완화는 결국 서민·중산층의 대출 규모를 확대시켜 가계부채 위험을 증폭시킬 것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 기업들이 투자하지 않고 쌓아두는 사내유보금에는 일정 비율의 법인세를 추가로 부과하는 안과 고배당 주식의 배당소득 원천징수세율을 현행 14%에서 9%로 낮춰주는 배당소득 증대세제도 실효성이 낮아 경제 활성화 효과가 미진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중산층이 사라진다...소득 양극화 심화

중산층이 하위 저소득층으로 밀려나면서 몰락이 가시화되고 있다.

통계청과 통계개발원의 ‘중산층 측정 및 추이 분석’에 따르면 중산층 측정지표인 ‘울프슨지수’가 2011년 0.254에서 2012년 0.256으로 상승했다. 울프슨지수는 중위소득으로부터 소득의 분산 정도가 클수록(양극화 할 수록) 중산층의 규모가 감소한다는 설정을 통해 중산층의 몰락 정도를 표시한 지수로, 수치가 0에 가까우면 중산층이 늘어나고 1에 가까우면 몰락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통계청은 국내 울프슨지수가 2006년 0.258에서 2007년 0.265로 뛰어오른 뒤 2008년 0.264, 2009년 0.265 등으로 보합세를 보이다가 2012년 들어 다시 악화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 같은 결과가 일시적 현상일 수 있다며 판단을 유보한 통계청과는 달리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생각하는 체감 중산층의 비중 역시 감소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당신은 중산층입니까’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공식 중산층(OECD 기준) 비중은 2009년 66.9%에서 2013년 69.7%로 2.8%포인트 상승했지만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체감 중산층 비중은 54.9%에서 51.4%로 3.5%포인트 감소했다.

체감 중산층 비중 감소는 지갑을 닫는 결과로 나타났다. 2005~2007년 연평균 4.7%였던 가계소비 증가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 감소했다가 2010년 4.4%로 잠시 오른 뒤 2011년 2.7%, 2012년 1.2%, 2013년 1.4%로 급격히 하락했다. 경제성장률이 2011년 3.7%, 2012년 2.3%, 2013년 3%인 것과 비교하면 가계소비 증가가 경제성장 속도의 절반 수준으로 위축돼 내수침체로 이어졌다.

우리나라 국민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중산층은 매달 515만원을 벌어 341만원을 쓰고, 35평 주택을 포함해 6억6000만원의 순자산을 보유한 가구다. 또 매달 12만원의 외식을 네 차례 즐기고 소득의 2.5%를 기부하는 가구를 중산층으로 봐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중산층은 매달 416만원을 벌어 252만원을 쓰고, 27평 주택을 포함해 3억8000만원의 순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매달 6만원의 외식을 세 차례 즐기고 소득의 1.1%를 기부했다.

전문가들은 중산층 붕괴 현상은 고소득층과 저소득층간의 빈부격차 확대, 소비침체 등 부작용을 야기하는 만큼 한국 경제의 또 다른 뇌관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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