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아직 ‘12척의 배’는 남아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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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직 ‘12척의 배’는 남아있을까”
  • 김경탁·이승구 기자
  • 승인 2014.08.10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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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대한민국 개조하자 ① 위기극복 리더십이 없다

[매일일보 특별기획취재팀]세월호 참사이후 국가개조가 시대적 소명으로 떠올랐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기했던 ‘국가개조’라는 화두를 시작으로 정부는 최근 각계가 폭넓게 참여하는 국무총리 소속의 가칭 ‘국가혁신범국민위원회’를 구성해 민·관 합동추진체계를 만들기로 했다.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국가안전체계의 실패와 관피아 만연과 같은 공직사회의 부조리 등 ‘적폐’ 척결을 민간의 참여속에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본지는 5회에 걸쳐서 ‘대한민국 개조하자’라는 시리즈를 기획해 정치, 경제, 산업, 사회 4개 분야에 걸쳐 국가개조의 필요성을 짚어보고 바람직한 해법을 도출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스스로를 이순신에 감정이입하는 경우는 매우 흔한 일이다. 하지만 ‘수사’를 넘어 현실적 역할을 볼 때 대부분의 현실정치인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이순신보다 선조나 원균의 그림자인 경우가 많다. 사진은 영화 '명량' 포스터

총체적 국가존망 위기 해법, '지피지기'로부터…이순신인가 원균인가

'이순신 리더십' 요체 신상필벌·선승구전…한국정치와 거리 먼 이야기

최근 사회 최대 핫이슈는 영화 ‘명량’의 기록적 흥행이다.

회생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총체적 위기 속에서 이순신이라는 한 리더가 이뤄낸 놀라운 성과는 정치권이나 재계 모두가 배우고 닮고 싶어했던 것이고, 지금 그런 리더십에 대한 국민적 갈구가 흥행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순신 리더십’의 성공요체는 신상필벌(信賞必罰)과 선승구전(先勝求戰)으로 집약된다.

우선, 공을 세운 자에게 상을 주고, 군령을 따르지 않은 자는 반드시 벌하는 ‘신상필벌’은 원균의 지휘 하에서 ‘오합지졸’이었던 조선수군을 이순신의 지휘 아래에서 최고의 강군으로 만들었다.

생즉필사 사즉필생(生卽必死 死卽必生)이라는 이순신의 발언이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병사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이순신이 이전까지 실천했던 ‘신상필벌’에 대한 신뢰가 바탕에 깔려있었다.

그런데 지금 ‘국가개조’와 ‘이순신 리더십’을 논하고 있는 정치권과 정부에 대해 일반 국민들은 ‘신상필벌’에 대한 신뢰가 없다.

두번째 ‘선승구전’은 이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놓은 다음에서야 싸우는 것으로, 이순신 ‘무패신화’의 핵심 비결이다.

‘선승구전’은 스스로 아군의 상태를 돌아보고, 적의 전력은 어떤지를 미리 파악하는 정확한 상황파악에 기반한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가 배경에 깔려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지도자들에게서는 ‘선승구전’의 기본 바탕인 ‘지피지기’를 엿볼 수 없다.

정확한 상황인식이 전제되지 않은 ‘국가개조’가 그저 흘러지나가는 정치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이유이다.

▲ "왜 대장선만 맨 앞에 버티고 있냐고!" 해전史에 길이 남은 12척과 330척의 대결 초반, 실제 싸움은 이순신이 탄 대장선 1척과 왜선 수십척의 대결이었다. 사진은 영화 '명량' 포스터

‘신상필벌’은 없었다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를 시작으로 지하철 사고, 고위공직자의 낙마로 인한 인사참사, 최근 발생한 ‘육군 22사단 임모 병장 총기난사 사건과 ‘육군 26사단 윤모 일병 구타 사망사건’ 등 군 관련 사고까지 2014년은 한마디로 ‘바람 잘 날 없는’ 시기였다.

일련의 사고 수습 과정에 정부는 무능력한 위기대응 방식을 계속 보여주었다. 국민적 공분과 불신이 점점 더 확산되고 있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정쟁에 매몰돼 정작 처리해야 할 법안들을 산더미처럼 미뤄두고 있어 국민들의 불안은 날로 가중되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일대 사건으로 평가되는 ‘세월호 참사’는 ‘과연 대한민국 정부는 존재 하는가’라는 의문을 낳았다.

국가적 재난상황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의 무능력한 위기 대응 시스템과 함께 책임지고 사고를 수습해야할 ‘재난 컨트롤 타워’는 없었고, 그 역할을 해야할 것으로 생각되는 사람들은 책임회피에 급급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수습을 제대로 마무리 짓지 않고 사의를 표했던 정홍원 총리는 결국 유임됐고, 연이은 ‘인사참사’의 책임자인 김기춘 비서실장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고 누차 강조했던 김장수 전 안보실장의 뒤를 이어 안보실장이 된 김관진 실장은 국방부 장관 시절 ‘윤 일병 구타 사망 사건’을 보고 받고도 조용히 묻으라고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러한 사고가 일어나게 된 원인으로 정부 관료들의 전관예우와 정경유착 등 이른바 ‘관피아’(관료+마피아) 문제가 큰 원인으로 지목되었지만 그 와중에도 정권 차원의 낙하산 인사는 중단되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국회는 시간만 보냈다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이를 감시하고 견제해야할 역할이 주어진 국회와 정치권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해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 정치개입 댓글 사건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故노무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발언 여부를 놓고 한 해를 소비했던 국회는 올해 역시 세월호 참사에 대한 후속입법 관련 갈등으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양측이 앞 다퉈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하겠다면서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를 만들었고, 각 당이 개별적으로 관련 특위를 만들었지만 참사 발생 110여일이 지나도록 눈에 띄는 성과를 도출하지 못한 채 교착상태이다.

여야는 19대 국회 후반기가 시작됐음에도 계류 중인 민생관련 법안 등 수많은 법안처리에 소극적 태도이고, 특히 세월호 참사로 불거진 ‘관피아’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떠오른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도 여전히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주 목요일 여야 원내대표가 세월호 특별법 등 시급한 현안을 오는 13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지만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그동안 요구했던 ‘진상규명’ 부분이 배제된 ‘정치적 야합’이라 반발하면서 전면 재협상 요구를 소리치고 있다.

▲ 10일 영화 '명량'이 투자배급사 CJ 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12일 만에 1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 부문 역대 최단기록을 보유한 '괴물'(2006, 1천301만)보다 9일 빠른 속도다. 역대 최다 관객을 동원한 '아바타'(2009, 1천362만)보다는 26일이나 빠르다. 이날 서울의 한 극장 모습. 연합뉴스

지금 필요한 것은 ‘지피지기’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국내 정치지도자들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국민 지도자로서 성웅 이순신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경우, 탄핵 역풍으로 당의 존립이 위태로웠던 2004년 3월 한나라당 대표로 선출될 때와 정권 재창출 가능성이 위태롭게 느껴졌던 2012년 4월 5일 당명을 바꾼 뒤에도 ‘12척의 배’가 언급됐고, ‘명량’이 흥행에 성공하자 직접 영화관을 찾아 관람하기도 했다.

사실 박 대통령 뿐 아니라 이름이 좀 있는 정치인들이라면 누구나 ‘12척의 배’와 이순신 리더십을 언급하는 것을 즐겨하고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을 필두로 하는 우리 정부와 정치권의 리더십에서는 이순신과 같은 ‘신상필벌’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왜란 중에는 이순신을 시기했고, 전쟁이 끝난 후 자신의 피난을 보필했던 인물들을 최고의 공신으로 치하했던 선조의 그림자가 진하게 느껴진다. 지금 정치권에는 ‘이순신 리더십’이라는 정치적 캐치프레이즈 외치기보다 ‘지피지기’가 우선적으로 필요해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이후 제기했던 ‘국가개조’라는 화두를 지난 7월 여야 원내대표와의 회동 이후 ‘국가혁신’으로 톤다운했다.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으로 느껴진다는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의 건의를 받아들인 것이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곳곳에서 연이어 터지는 각종 안전사고와 인사 참사, 군 관련 사고 등을 통해 ‘망국’의 조짐이 계속 이어지는 상황에서 ‘국가개조’든 ‘국가혁신’이든 용어에 대한 시비는 지엽말단적인 문제이다.

‘조짐’이 ‘현실’로 도래하기까지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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