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무원노조와 민중의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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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공무원노조와 민중의례
  • 인터넷뉴스팀
  • 승인 2009.12.1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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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보통사람들은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직장동료의 크고 작은 집안행사에 참석할 기회가 가끔씩 주어지곤 한다.

이럴 때 마다 느끼는 것이 집안마다, 더 크게는 출신지역에 따라 행사의례의 방식과 절차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특히 지방으로 갈수록 수도권과는 다른 독특한 방식과 절차에 따라 의례를 진행하는 것을 쉽게 발견하곤 한다.

이렇게 좁은 땅덩어리에서 수천년을 단일민족으로 살아온 우리들이다. 이렇게 살아온 우리의 보통 사람들도 집안마다 지역마다 약간씩의 의례절차가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다른 점을 이상하게 보거나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지 않는다. 단지 저 집안의 문화는 저런 것이구나, 저 지방의 문화는 저렇구나 하고 느낄 뿐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이런 문화에도 문제가 생길 모양이다. 공무원노조가 민중의례를 한다고 징계의 칼을 빼들었다.

공무원노조 행사에 국민의례를 해야지 왜 민중의례를 하느냐는 문제 제기이다. 공무원들은 직업의 특성상 어느 누구보다도 국민의례에 많이 참석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노조의 자체행사 때 국민의례를 하지 않고, 민중의례를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공무원들이 기관 측에서 주최하는 조례나 기념식 등의 행사에 참석해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는데, 노조 소속의 공무원들은 따로 민중의례를 진행했다면 징계사유가 될 수도 있을 듯싶다. 그런데 정부는 노조가 주최하는 자체 행사에서 민중의례를 하는 것이 잘못이며, 징계의 대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공무원들이 참석하는 행사에는 반드시 국민의례를 하여야 한다는 것인데,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공무원들로 이루어진 직장 내 취미클럽이나, 종교모임 같은 데에서도 행사를 진행하기 전에 반드시 국민의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모임에서 국민의례를 하지 않은 공무원은 모두 징계해야 형평에 맞는 일이 된다.

공직사회 내에는 공무원들로만 이루어진 다양한 취미모임이나 종교모임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런 모임들은 자신들의 독특한 방식에 따른 의례를 진행하는 것이 상식이다. 산악회는 매년 봄에 시산제라는 제를 올리는데 여기에서 국민의례를 한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또 공무원 기독교 모임은 반드시 예배 전에 국민의례를 하고 예배를 드려야 하고, 공무원 불교 모임에서는 예불 전에 국민의례를 하고 예불을 올려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의례의 문제는 어떤 사람들이 주최하고 참석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행사에 성격에 맞는 전통적 방식의 의례가 존재하는 것이고, 그냥 그것을 그들의 문화로 인정하면 되는 문제이다. 우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도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전에 국민의례를 하고 영화를 보아야하는 세상에서 살아야만 했다. 우리는 이 시대를 그냥 독재시대라고 부른다.

또한 공무원노조가 하는 민중의례의 방식은 대략 이렇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하여 투쟁하다가 먼저가신 선배 열사들과, 공무원노조 건설을 위하여 투쟁하다 먼저 가신 선배동지들을 위하여 모두 묵념하시겠습니다.”

아니 공무원은 민주화 투쟁을 하시다 먼저 가신 분들을 위하여 묵념하면 죄가 된단 말인가? 그리고 공무원노조 건설을 위해 희생된 선배들을 생각하는 것도 죄가 된다면 이게 어디 사람 사는 세상이란 말인가?

묵념이 끝난 후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노래를 합창한다. 이 노래는 우리 국민이면 대부분 알고 있듯이 “5. 18 민주화 운동”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노래이다. 이 노래를 부르지 말라는 것은 5. 18 민주화 운동의 법적인 합법성을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말라는 정부의 발상 속에는 광주항쟁이 아직도 전두환 군사독재시절의 규정 그대로 광주사태로 머물러 있는 듯하다.

박정희 유신독재와 전두환 군사독재시절에는 매일 국민의례가 있었다. 박정희 유신독재 때에는 차모라는 청와대 경호 실장은 매일 저녁마다 국기 하강식을 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과시했다. 전두환 군사독재 때에는 매일 저녁이면 길을 가던 모든 국민이 멈춰 서서 국기 하강식을 진행해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신독재 권력을 좌지우지 했던 경호실장은 같은 편이 쏜 총탄에 쓰러졌고, 군사독재의 상징이었던 국기 하강식은 87년 6월 국민들이 거리로 나서는 신호가 되었다. 애국가를 마친 국민들은 차도로 내려와 “독재타도”를 외쳤고, 그렇게 독재시대는 막을 내렸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권력은 다시 슬픈 역사를 되풀이 한다.

공무원들에게 국민의례를 강요하는 정권 때문에 공무원을 후손으로 둔 조상님들이 깜짝 놀라는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 이명박 정권의 주장대로라면 공무원인 후손들이 조상님 제사를 지내기 전에 모두 모여 애국가를 합창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정용해 <민중의 소리> 기자 jyh0381@hanmail.net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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