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평론] ‘질 수 없는 선거’와 제1야당
상태바
[시사평론] ‘질 수 없는 선거’와 제1야당
  • 장성준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14.08.03 14: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일일보]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그야말로 맨붕 상태다. 7·30 재·보궐선거 패배에 따른 후폭풍 때문이다. 특히 순천·곡성에서의 패배는 그야말로 뼈아팠다. 텃밭인 호남에서의 새누리당 교두보 확보를 허용한 것이다. 은근슬쩍 묵인한 사실상의 야권연대인 동작을에서의 패배 또한 폐부를 찌른다.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동반사퇴했다. 낙마한 손학규 고문은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비상사태인 것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스스로 ‘질 수 없는 선거’라고 평가한 선거에서 완패한 탓이다. 선거 초기만 하더라도 세월호 참사와 연이은 총리 후보자 낙마 등 박근혜 정부의 인사 문제로 여당 패배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자만했느니, 공천 잘못이니 하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소위 ‘질 수 없는 선거’에서의 패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2년 실시됐던 지난 19대 총선에서도 당시 민주당은 ‘질 수 없는 선거’라 자평했다. 이명박 정부의 무능에 성난 표심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러나 결과는 152대 127의 참패였다. 노원갑에 공천한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문 등이 표심을 등돌리게 만들었다. 그때도 자만했느니, 공천 잘못이니 갑론을박(甲論乙駁)했다. 왜 제1야당에서 이런 현상이 반복되는 것일까.

자신만의 안전한 길에만 집착해 왔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의 잘못을 비판하고 질책만 하면서 반사이익만 챙기면 적정한 의석수가 보장된다는 안이한 생각 말이다. 국민은 시대적 조류에 따라 변화하라는 신호를 야당에도 끊임없이 보냈다. 이를 애써 외면한 것 또한 주요 원인이다.

국민들이 기대하는 야당상(像)은 여당을 견제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언론으로도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적어도 야당은 집권을 위해 새로운 정책 대안을 생각하고, 이를 검증하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렇기에 변화하는 세상에 맞는 정책을 들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유권자는 이기적이다. 아니 이기적이 될 수밖에 없다. 정치 좀 잘하라고 허리띠 졸라매며 피 같은 세금 내고 있는데 이기적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먹고 살기 위해 생업에 종사하니 시민운동가가 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더더욱 이기적으로 표심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외면한 채 반사이익만 챙기려 하니 누가 표를 주겠는가.

이제 새정치민주연합은 냉정한 민심의 바다로 나와야 한다. 적당히 지역적 기반에 안주하던 안락함을 떨쳐버려야 한다. 지금껏 그렇게 못한 것은 기득권을 놓칠 것이 두려웠기 때문임을 자인(自認)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스스로 철석같이 믿고 있는 이념적 프레임의 타당성도 국민의 입장에서 처절히 검증해야 한다. 기존 생각을 버리지 않고 어떻게 과거와의 차별화를 논할 수 있겠는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는 또다시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지금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그린 영화 ‘명량’이 화제다. 이는 이순신식(式) 역발상(逆發想)이 없으면 현재의 위기상황을 돌파해 나갈 수 없다는 민심의 반영이다. 기존 상식과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것이 곧 역발상이다.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를 명심해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여와 야는 집권을 위해 싸우기도 하지만 견제와 균형을 통해 함께 국정을 책임지는 동반자적 관계임도 분명하다.

야당이 지리멸렬해지면 여당은 기고만장해지고 국민은 허탈해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