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초가삼간 다 태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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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초가삼간 다 태우나?
  • 정수남 기자
  • 승인 2014.06.20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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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정수남 기자] 우리 속담에 ‘벼룩 잡으려다 초가 삼간 다 태운다’는 말이 있다. 사소한 일 때문에 큰 일을 망친다는 뜻이다. 요즘 산업통산자원부를 빗댄 말 같다.

산업부는 오는 7월 1일부터 석유제품 거래상황기록부 주간보고 제도를 도입한다. 1972년 시행된 이 제도는 석유수급의 안정성과 석유유통시장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석유사업자의 석유제품 거래 상황을 정부에 보고토록 규정한 제도이다.

정부는 종전 월 1회 수기 보고에서, 주 1회 수기 또는 전산 보고로 강화한다. 이유는 가짜석유 유통 근절이다. 석유 유통량을 거의 실시간으로 확인해 가짜석유로 인한 부정적인 사건·사고로부터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주유업계는 제도 도입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정부의 주유소 간 경쟁 정책으로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는데, 여기에 업무 가중으로 주유소 경영이 더 어려워진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로 인해 주유업계를 대표하는 한국주유소협회는 지난 12일 회원주유소 3000여곳과 함께 대규모 동맹 휴업을 결정했으나, 산업부가 강력한 대처 방안을 내놓자 일단 유보했다. 주유협 등은 오는 24일 다시 동맹휴업을 예고한 상태다. 이번에는 공정거래위원회까지 가세해 파업 시 협회의 휴업강제 여부를 조사한다고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건 아니다 싶다.

벼룩 한마리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격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짜석유 유통으로 발생하는 안전 사고와 1조원의 탈세를 예방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가짜석유 유통 근절은 종전 석유관리원과 지방자치단체, 경찰 등과 공조로 진행하는 단속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2010년대 들어 가짜석유 단속이 강화되면서 가짜석유를 제조·유통·판매한 업소 등은 2010년 1045곳에서 2011년 990곳 2012년 726곳, 2013년 699곳으로 꾸준히 감소했다.  같은 기간 1분기에만 가짜 석유를 판매하다 석유관리원에 적발된 주유소는 478곳에서 479곳, 273곳, 213곳으로 줄었고, 올해 1분기에는 101곳으로 전년 동기보다 111% 감소했다.

여기에는 산업부가 2012년 5월 ‘가짜석유 근절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가짜석유를 판매하다 적발된 주유소에 대해 등록을 취소하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했고, 2년 간 같은 장소에서 영업을 금지토록 했기 때문이다. 가짜석유 취급에 따른 과징금도 종전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올렸다.

주유소가 가짜석유를 팔아 적발될 경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꼴을 당하는 셈.

석유제품 거래상황기록부 보고는 월 1회로도 충분하다. 목이 좋은 주유소는 짧게는 3일, 길게는 5일 간격으로 저유소에 기름을 채운다. 그렇지 않은 주유소는 평균 일주일 정도라고 한다. 일선 주유소들이 저유소에 기름을 채우는 주기를 확인하고 판매한 양과 남은 양을 비교하고 매출을 확인하면 충분히 가짜석유 취급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

현재 정부의 태도는 ‘손 안대고 코 풀겠다’는 심보다.

앞서 2011년 국제 유가 상승으로 국내 기름값이 꾸준히 상승하자, 이명박 대통령은 연초에 “국내 기름값이 이상하다”는 말을 했다. 국제유가가 오를 때는 국내 가격도 덩달아 빠르게 오르지만, 국제유가가 내릴 때 국내 유가는 더디게 내린다는 비대칭성을 지적했다.

이를 감안, 당시 최중경 산업부(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은 국내 정유사들의 기름 가격 책정 방식을 들여다보겠다면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결국 정유사들은 정부의 압박으로 고통분담 차원에서 3개월 한시적으로 기름 가격을 리터(ℓ)당 100원 내려서 팔았다.

이후 기름 가격이 다시 고공행진하자 최 장관은 기름 가격 인하요인을 주유소에 찾겠다는 취지로 주유소 장부로 눈을 돌리렸다. 최 장관은 한달여 기간 주유소를 면밀히 들여다봤지만, 결국 인하 요인을 차지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섰다. 그만큼 과거 주유소와는 달리 현재 주유소가 깨끗하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현재 산업부에서 석유 등 에너지 정책을 주관하고 있는 공무원들은 대부분 최 장관 재직시절 함께 일했다.

제도 도입 취지도 좋지만, 산업부가 최 장관의 교훈을 생각해 보면 어떨 지 하는 생각이 든다. 주유를 하는 사람도 주유소를 운영하는 사람도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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