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앞에서는 ‘내 일’…TV 떠나면 ‘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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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앞에서는 ‘내 일’…TV 떠나면 ‘네 일’
  • 정수남 기자
  • 승인 2014.04.2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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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정수남  기자]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21년 전 서해 훼리호 참사, 4년 전 천안함 침몰 사건도 모두 잊었다. 이 망각 기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7일 전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건도 잊게 만들었다.

지난 21일 밤, 여의도 일대는 불야성을 이뤘다.

사무실 밀집지역으로 낮에는 화이트 칼라인 이곳은 밤만되면 붉은 조명을 발산하는 유흥지대로 옷을 갈아 입는다.

이로 인해 어둠이 깔린 여의도에는 이곳에 적을 둔 직장인 뿐만이 아니라 인근 영등포와 마포, 신촌 일대에서 원정(?) 온 직장인들이 부지기 수다.

낮에 멀쩡하던 도로는 교통 체증이 일어날 정도다.

모두 주말을 편안히 쉬고, 불타는 월요일 밤을 지내기 위해 모인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어느 술집을 찾을까 고심하고 있다. 이들은 술집 고르기에 열중하면서도 쉴새 없이 농을 건내며 희희락락 거린다.

이들 대부분의 혀는 주말에, 그리고 낮에 사무실에서 TV를 통해 세월호 참사 소식을 듣고 ‘끌끌’ 거리면서 애도의 표현을 했으리라. 일부는 아타까움에 눈시울까지 붉히면서 연방 시선을 허공으로 돌렸으리라. 마치 ‘내 일’처럼.

하지만 서너 시간이 지난 다음 이들은?

주말과 낮 일은 까마득하게 잊고 밤을, 그리고 술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다.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머금고서. 이제 TV 속 이야기는 ‘네 일’이 됐다.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우리들은 흔히 시쳇말로 멍청한 사람을 비유해 ‘닭 대가리’니, ‘새 대가리’니 하는 저급한 표현을 쓴다. 심하게는 ‘물고기 아이큐’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3초가 지나면 모든 것을 잊고 다시 낚시 바늘에 걸린 미끼를 입질하는 물고기를 뜻하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들 한다. 그만큼 미물과는 다른 무엇인가 특별한 게 있어서 일 게다.

그중 하나가 ‘고통 분담’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남의 ’일을 내 일처럼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는. 하지만 여의도 밤거리의 모습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상당하다.

자기 부모가 돌아가셨다면, 우리는 밤거리를 헤메이면서 농짓거리를 하고, 술집을 찾을까?

일주일만에 100여명이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왔다.

돌아오지 않는, 꽃도 피우지 못한 200여명의 젊은 청춘들의 목숨과 우리 부모의 숨소리 중 어느 쪽이 더 무게가 나갈 지 ‘물고기 아이큐’로 전락한 여의도 일대 셀러리맨들에게 묻고 싶다.

자식은 부모가 죽으면 ‘세월에 묻고’,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 인간사에는 때때로 잊지 말아야  할 일들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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