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식물국회’보다 ‘날치기국회’가 낫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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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식물국회’보다 ‘날치기국회’가 낫다는 말인가
  • 한아람 기자
  • 승인 2014.04.08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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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아람 정치부 기자

[매일일보 한아람 기자] 욕설과 주먹다짐은 기본, 최루탄·해머·전기톱 등…. 범죄현장에서나 나올법한 이런 물건들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진 이후 구성된 13대 국회부터 18대 국회의 법안 처리 현장에 등장했던 것들이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의 상징이 돼야 할 대한민국 국회가 고성과 막말이 오가는 ‘폭력’의 상징으로 대중들에게 각인된 것은 그리 오래전 이야기도 아니다.

오랜 세월 ‘한결’ 같던 국회가 19대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의 날치기 법안도, 폭력적인 본회의장 점거도 사라진 것이다. 그 배경에 ‘국회 선진화’법이 있다.

2012년 5월 국회의 고질병을 고치겠다며 여야가 합의·처리한 법안이 바로 ‘국회 선진화’법이다. 특히 당시 박근혜 대선후보를 주축으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진두지휘하며 법안처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국회 선진화법’은 시행된 지 불과 2년도 되지 못해 존폐 혹은 무력화 위기에 몰렸다. ‘국회 선진화법’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국회 선진화법’ 도입에 앞장섰던 바로 그들이다.

이들의 항변은 이렇다. 선진화법 제정 이후 ‘날치기’법안을 가능하게 했던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이 재적의원 3/5이상의 동의로 강화된 탓에 국회법안 처리의 효율성이 떨어졌고, 그 결과 소수야당이 발목 잡는 ‘식물국회’로 변질됐다는 것.

국회의 ‘효율성’을 이유로 국회선진화법의 후퇴를 주장하는 것은 본질을 잘못짚은 처방이다. 본질은 대화와 타협의 자세다. 이는 민주주의의 기본자세이자 국회의원의 기본 덕목이다.

소통을 할 수 있는 제도와 합의 의식을 기르는 방향이 아닌 신속한 법안처리만을 고려해 폭력과 막말이 난무하는 ‘막장’국회로 회귀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이다.

흔히 정치란 ‘내 것을 하나 주고, 네 것을 하나 얻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곧 정치가 합의주의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합의’와는 거리가 멀다.

국정운영의 파트너이자 제1야당의 대표가 청와대까지 직접 찾아 대통령에게 거듭 대화를 청함에도 불구하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정부. 야당대표의 연설 중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너나 잘해”라고 고함을 쳐 ‘제 얼굴에 침 뱉은’ 여당 원내대표. 이것이 지금 현 정부여당의 모습이다.

이 같이 민주주의의 기본중의 기본인 대화와 타협의 자세를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든 이들이 ‘식물 국회’를 이유로 ‘선진화법’의 존폐를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

또한 ‘식물국회’보다는 차라리 ‘날치기’국회로의 회귀가 낫다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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