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주인이 '국민이냐' '삼성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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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주인이 '국민이냐' '삼성이냐'
  • 권민경 기자
  • 승인 2005.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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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세 의원 “삼성 입김에 ‘KBS 열린 채널’ 닫힌 채널 오졈

시청자 참여 프로 ‘삼성 공문’에 방영보류 결정
시민단체, 거대 기업의 외압에 굴복한 KBS 비겁

공영방송 KBS가 방송예정이던 고 구본주 사건관련 영상기록 ‘우리 모두가 구본주다(감독 태준식)’를 삼성의 압력에 의해 방영 보류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KBS와 삼성이 도마에 올랐다.

지난 4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천영세 민주노동당 의원은 방송 예정이던 삼성 관련 프로그램이 방영 중단된데 대해 "KBS의 주인이 시청자냐, 삼성이냐"고 비판했다.

천 의원은 KBS에 대한 국감에서 최근 '열린 채널'을 통해 방송될 예정이었던 '우리 모두가 구본주다 '라는 제목의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이 방영 이틀 전인 9월8일 보류 결정 된 것에 대해 집중 추궁했다. 이에 대해 KBS측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이므로 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을 방송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시민단체에서도 이번 방영보류 결정은 거대 기업의 외압에 굴복한 KBS의 비겁한 결정이었다며 강하게 항의하고 있어 파장이 커지고 있다.

‘우리 모두가 구본주다’는 지난 2003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미술가 구본주의 생명보험 지급문제와 관련해 삼성화재가 유족에게 배상해야 할 보험금을 덜 주기 위해 고인의 예술인 경력을 인정하지 않아 논란이 된 사건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유가족과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삼성화재를 상대로 소송을 청구, 현재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받고 항소심이 진행 중에 있다.

천 의원은 이날 국감에서 "이미 KBS의 ‘시사투나잇’이나 ‘세상의 아침’ 등에 방송되었던 소재였음에도 9월 8일 삼성화재의 공문을 접수한 뒤 바로 그날, 재판중인 사안이라는 이유를 들어 시청자위원회 산하 시청자프로그램운영협의회의 방영결정을 일방적으로 뒤집은 것은 시청자 참여권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천 의원에 따르면, KBS는 지난 8월 12일 이 프로그램의 방송을 결정했으나, 삼성화재로부터 공문을 접수한 직후 심의심에서 방송보류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KBS는 ‘방송심의에관한규정’에 따라 재판이 계속 중인 사건을 다룰 때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을 방송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KBS측의 입장에 대해 천 의원은 "공영방송 KBS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방송인지 모르겠다"며 "방송법상 한계가 있더라도 KBS가 적극적으로 시청자프로그램의 방영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해야 함에도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삼성의 압력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천 의원은 또 "열린 채널의 시청자위원회의 결정을 무시한 일방적인 심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천 의원은 "2004년 12월3일 ‘외대뉴스제작단’이 제작한 ‘국가보안법과 한총련’, 지난 7월23일 하이닉스 노동자들의 문제를 다룬 ‘우리는 일하고 싶습니다’ 등이 시청자위원회 결정을 무시하고 방영 직전 방영보류 판정을 받았다"며 "열린 채널의 독립적인 운영기구가 엄연히 존재함에도 이 결정을 무시한 채 심의실에서 방송 보류 판정을 내린 사태가 근 1년 사이 벌써 세 번째나 발생했다.

더욱이 하이닉스 방송 보류 사태가 발생한지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또 이런 문제가 재발한 것은 더더욱 납득이 안 가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정청래 열린우리당 의원 역시 “‘열린 채널’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제3섹터의 프로그램이어야 한다”면서 “그러나 KBS는 거대 광고주 삼성의 요구에 따라 방영결정을 보류하게 된 것은 아닌갚 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정 의원은 ‘시사투나잇’이나 ‘세상의 아침’ 등 여타 KBS의 프로그램에서 관련 사안을 다룬 점을 설명한 뒤, “심의실에서 방영 이틀을 남긴 시점에서 삼성으로부터 받은 ‘방영 금지’ 협조 공문을 접수하고 전격적으로 방영불가 결정을 내렸다는 점에서 많은 의구심을 갖게 한다” 며 의혹을 제기했다.

정 의원이 제시한 한국방송광고공사 자료에 따르면, 2004년 1월 1일부터 2005년 8월 31일까지 KBS에 나간 삼성의 광고비는 무려 835억 6천400만원에 이른다. 정 의원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KBS의 입장에서 광고주의 요구는 적잖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며 “우리 방송이 상업주의나 선정주의로 흐르는 데는 틀림없이 자본의 요구가 있는 것이고, ‘열린 채널’ 사건 또한 이런 맥락에서 짐작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열린 우리당의 이광철 의원도 이와 같은 입장을 함께 하면서 “조각가 구본주와 관련된 영상기록을 즉시 방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방송법에 보장된 시청자참여프로그램 편성 의무 조항이 우선인가, 아니면 KBS 심의실 등의 심의규정이 우선인갚라고 물은 뒤 , “뚜렷한 근거도 없이 심의규정보다 상위에 있는 방송법까지 무시하면서 이 프로그램을 방송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시민단체 또한 이번 KBS의 ‘우리 모두가 구본주다’ 방송보류는 거대 자본에 대한 굴복이라며 판정을 철회하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고 구본주 소송 해결을 위한 예술인 대책위원회는 “‘우리 모두가 구본주다’는 거대자본에 맞선 소수자들의 소박하지만 소중한 목소리를 담아낸 의미 있는 작품이다” 며 “KBS가 말하는 ‘공영방송’이 누구를 위한 공영인지 다시 생각해 보라” 고 질타했다. 또 “KBS는 시청자들의 방송참여를 껍데기만 남은 형식적 참여로 전락시켜 버리기 전에 지금이라도 ‘열린채널’ 의 취지를 살려 방영보류 판정을 철회하라” 고 촉구했다.

미디어교육, 미디어센터 등 미디어운동을 추진하는 전국 90여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는 “KBS는 ‘삼성화재 측의 공문은 단지 참고사항일 뿐’이라고 변명을 하고 있지만, 방송보류 결정을 내린 시점과 삼성화재 측의 공문이 접수된 시점이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은 KBS가 대기업의 외압에 굴복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고 주장했다.

또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은 힘없는 사람들이 발언할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다” 며 “다시는 삼성과 같은 권력 있는 자들의 힘에 의해 시청자들의 표현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일이 재발되지 않기 위해 현행 방송법에서 규정된 시청자참여프로그램에 대한 별도의 심의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고 요구했다.

‘열린채널’의 시청자 게시판에도 연일 KBS의 프로그램 보류 방침에 항의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아이디 kio77 는 “KBS는 국민보다 삼성이 더 겁나나?” 라고 비꼬았고, psyche22 는 “'우리 모두는 구본주다‘는 이 시대 힘없는 사람들의 보편타당한 작품이다. 더 이상 규정 운운하며 시청자참여 프로그램의 가치를 훼손시키지 말라” 며 KBS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kibhohp 또한 “열린 채널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본연의 취지를 살리기 바란다” 는 내용의 글을 올렸고 knife707는 “삼성의 입김 한번에 방송보류라니... 시청자를 우롱하는 건가?”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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