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일보 = 최동훈 기자 | 표준 선점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일부 국가에서는 최근 경쟁 우위의 외국 업체를 겨냥한 반독점 규제가 시행되고 있어 국내 기업들의 대책이 요구된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유럽연합(EU), 미국 등 주요 권역에서 최근 일부 기업의 시장 독점 여부를 판단하고 이를 통제하려는 정책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EU는 ‘빅테크’로 불리는 유력 정보기술(IT) 기업들을 대상으로 플랫폼 사업에 대한 시장 지배력 남용을 통제하기 위한 디지털시장법(DMA)을 도입했다. 알파벳, 애플, 메타 등 6개사가 특별 규제 대상에 꼽혔다. 당초 삼성전자도 자체 브라우저 ‘삼성 인터넷’을 운영한다는 이유로 규제 대상에 올랐다. 다만 이에 삼성전자가 EU 측에 적극 소명한 결과 “규제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받고 포위망에서 벗어났다.
미국에서는 최근 반독점을 소비자 효용 훼손 여부 대신 기업간 공정 경쟁, 경제적 권력 견제 가능 여부로 판단하는 관점이 힘을 얻고 있다는 관측이다. 구글, 메타(페이스북) 등 정보기술(IT) 업체들이 기능성 높은 플랫폼을 바탕으로 소비자 편익을 강화하는 반면 경쟁 우위를 넘어 지배적인 입지를 구축한 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전례 없는 기술이나 서비스가 시장을 개척해 소비자들의 일상을 윤택하게 만들었지만, 이후 시장 주도권이 공고해질수록 선점과 독점의 경계를 넘나드는 리스크를 안는다는 분석이다.
황수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새로운 반독점 관련 법안은 소비자 효용뿐 아니라 시장 전체의 경쟁 질서를 훼손하는 지에 대한 기준을 포함해야 한다”며 “또한 규제 당국의 신기술에 대한 판단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테슬라의 전기차 충전규격 NACS 사례도 반독점 규제의 맥락에서 읽히는 시장 선점 사례다. 테슬라는 연방정부의 규정에 따라 NACS 규격의 충전기를 경쟁사 고객에게도 개방한다는 조건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고객에 배타적인 서비스의 일부로 운영해오던 전기차 충전기를 전면 개방함에 따라 더 높은 곳에 위치한 목표인 표준 선점을 달성할 수 있었다.

미국이 자국 중심 무역기조인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를 펼치고 있지만, 토종 기업인 테슬라에게도 반독점 규제의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며 공정 가치를 확보하고 있다는 평가다.
애플은 테슬라와 반대 방향의 결단으로 상위 목표를 추진할 동력을 얻었다는 분석이다. 그간 고수해오던 자체 스마트폰 충전규격인 라이트닝 커넥터를 포기해 EU의 충전규격 규제에 부응한 후 외부로부터 “USB-C타입 채택은 (소비자 편익 측면에서) 확실히 아이폰에 좋은 일”(더버지)이라는 긍정적 반응을 얻었다.
업계에서는 법적 테두리 안에서 기술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표준화 전략으로 국가별 경쟁정책을 비롯한 해외 규제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규제가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글로벌 추세 속에서, 기업과 국가가 표준 안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 독점의 폐해를 방지할 수 있는 길이라는 관측이다.
안준모 서강대 교수는 “표준화는 특정 기술에 대한 기준이나 규격을 만들어 호환성을 높이는 행위”라며 “기업이 기술 표준을 제정하고 이에 관한 규제를 자율적으로 만들어가는 역할이 강화해야 한다”고 분석했다.